영웅호걸들의 섹스
성생활에 대한 태도는 대략 두 가지 유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그것을 감추고 절대적 비밀로 하는 사람과, 다른 하나는 자신의 섹스를 감추지 않고 자랑하는 사람의 두 타입이다.
공교롭게도 필자가 기고하는 칼럼 탓인지 자신의 성 기록을 과시하려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와서 자신의 전력을 숨김없이(?) 고백한다. 마치 이 정도면 국내 챔피언 벨트는 자기 차지가 아니겠느냐고 물으러 온 것 같은 태도다.
성의식 발달사를 통해 보면 전신의 신경 시스템이 감각기능에 지나치게 집중된 나머지 적이 접근한다든가, 남이 엿보고 있다든가 하는 다른 감각적 인식에는 둔감해지는 것이 바로 섹스의 생리다. 그래서 인간의 초기단계에서 섹스는 어둡고 차폐된 장소를 찾아가 차분하게 심리적 안정이 보장된 분위기 아래 느긋하게 성행위를 하는 것이 정형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반대로 남성의 성심리가 불안정하면 다시 방어력이 약한 조류의 성심리로 환원되어 빠른 사정, 즉 조루가 일어난다. 이와는 반대로 천적의 침략이 두렵지 않을 만큼 강자가 되면 어떤 천적의 공격도 능히 물리칠 수 있으므로 굳이 어두운 장소에 숨어서 섹스를 할 필요가 없게 된다.
즉 공개적으로 생식행위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섹스에는 그런 절묘한 성심리의 차이가 존재하므로 영웅호걸의 성생활은 여성에게 강하면서도 만족스러운 성의 쾌락을 늘 가져다주는 장점이 있다. 그런 섹스로 명성이 높은 인물이 곧 금(金)나라의 완안량(完顔亮)이란 통치자다.
그는 주변에서 그를 지키는 신하들이 자신의 섹스 장면 모두를 시원스럽게 볼 수 있도록 시야를 가리는 생활 집기들을 모두 치우도록 지시한 후, 정사(情事)에 들어가면서 그 광경을 주시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측근들은 생사여탈권을 가진 주군의 민망스러운 광경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으므로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애써 외면했다.
만약 이런 항명사태가 임금에게 발각되면 그 신하에게 가차 없는 형벌이 가해져 효수까지도 각오해야만 했을 만큼 관람장(觀覽場) 분위기가 아주 살벌했다. 통치자의 섹스가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관계한 여자의 수를 과시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서진(西晉)의 황제 사마염(司馬炎)은 오(吳)나라를 정벌하고 그 궁전의 여성을 모두 끌고 가서 자신의 후궁으로 삼았는데 그 수가 5000명이 조금 넘었다.
그 수가 그렇게 엄청났으므로 그녀들의 신상파악도 쉽지 않았으므로 수청을 들 여자의 선발은 양(羊)으로 하여금 수레를 끌게 해서 그놈이 걸음을 멈춘 곳에 있는 후궁을 섹스 파트너로 삼는다는 추첨방식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사서에 남아있다. 여성 파트너의 수를 과시하는 것은 중국 남자들의 오랜 관행인데, 문화와 문명이 다른 유럽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모파상은 ‘영원히 늙지 않는 남근(permanent penis)’이라는 별명을 가졌을 만큼 왕성한 발기력의 성기 소유자였고 그의 기록은 주로 창녀를 상대로 수립된 데이터였다. 반면에 빅토르 위고는 술을 마심에 있어 그 청탁(淸濁)을 안 가리듯 다양한 계층의 바람난 여자들을 유혹해 즐기는 섹스 애호가였다.
남편을 가진 유부녀가 섹스 편력의 대상들이었으므로 항상 도덕의 한계선을 상습적으로 이탈한 것으로 명성이 높았는데, 심지어 아들의 연인까지도 잠자리로 끌어들였을 만큼 성생활에 정해진 금단구역이 따로 없었던 것으로 유명했다.
곽대희비뇨기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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