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도 저도주(低度酒) 경쟁
최근 웰빙 트렌드에 발맞춰 소주 알코올 도수가 종전 25도에서 16도까지 내려가고 있다. 하지만 위스키 도수는 여전히 40도에 머물고 있다. 요즘 경기불황 속에 값비싼 위스키를 멀리하는 소비자들은 평소 낮은 도수의 소주를 즐기다 가끔씩 위스키를 맛보고는 “너무 독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위스키 도수는 요지부동 40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외국 브랜드 중에는 43도도 많다. 소주는 물론 맥주 도수까지 내려가고 있는 판에 왜 유독 위스키 도수만 40도 이상을 유지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위스키 생산의 종주국인 영국 스코틀랜드에 있다. 전세계에서 소비되는 위스키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스코틀랜드 위스키협회에서 “스카치 위스키의 알코올 도수는 40도 이하로 내려가서는 안 된다”고 명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위스키 수입국들이 스코틀랜드에서 수입한 위스키 원액에 물을 많이 타서 40도 이하의 싸구려 위스키를 만들어 위스키 종주국의 이미지를 훼손해온 사례들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스카치 위스키’라는 이름을 붙여 위스키를 판매하려면 최소한 알코올 도수가 40도를 유지해야 한다. 세계 6~7위 위스키 수입국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동안 알코올 40도 이하의 위스키는 나오지 못했다. 한국에서 유통되는 위스키의 95% 이상이 스카치 위스키이기 때문에 무리하게 알코올 도수를 낮추어 ‘스카치 위스키’라는 프리미엄급 브랜드를 포기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백년 동안 묶였던 ‘알코올 40도 마지노선’을 넘어버린 위스키가 한국에서 처음 나왔다. 상황버섯 발효주 천년약속을 생산하는 ‘수석밀레니엄’은 지난 12월 초 인간의 체온(36.5도)과 숫자가 똑같은 알코올 도수인 36.5도짜리 위스키 ‘골든블루(Golden Blue)’를 새로 내놓았다. 이 회사는 종합주류회사인 ㈜수석무역이 인수한 후 지난 11월 사명을 천년약속에서 수석밀레니엄으로 바꿨다.
수석밀레니엄은 왜 일정 수준의 판매가 보장된 안정된 간판(스카치 위스키)을 포기하고 알코올 도수를 36.5도로 낮추었을까. 수석밀레니엄의 김일주 사장은 “부드러움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위스키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해 기존 40도 위스키에서 3.5도만큼 알코올을 덜어내 최상의 부드러운 맛과 진정한 위스키 향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차세대 프리미엄 위스키가 곧 골든블루”라고 말했다.
수석밀레니엄이 신상품 골든블루의 알코올 도수를 36.5도로 낮춘 것은 한국인의 위스키 음용 습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영국, 미국 애주가들은 대부분 위스키를 물로 희석해(알코올 도수 15~20도) 마시는 반면 한국인들은 줄곧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인 중에는 처음에는 스트레이트로 마시다가 나중에 얼음 혹은 물을 타서 마시거나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는 경우도 많다. 수석밀레니엄 측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애주가들은 ‘첫 맛이 부드러운 위스키’(35%)를 가장 이상적인 위스키로 꼽는다. 그 다음으로 선호하는 기준은 ‘목 넘김이 부드러운 위스키’(26%), ‘향이 은은한 위스키’(15%), ‘향이 풍부한 위스키’(13%), ‘톡 쏘는 맛과 향이 있는 위스키’(11%)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이 12~17년 등 숙성이 오래된 고급 위스키를 유달리 찾는 이유가 바로 숙성 기간이 길수록 위스키 맛이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골든블루를 개발한 영남대 이종기 교수(위스키 윈저 개발자)는 “위스키 맛을 부드럽게 하려면 숙성을 오래 시킬수록 좋지만 가격이 워낙 비싸지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며 “골든블루는 맛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숙성을 오래 시키는 대신, 알코올 도수 자체를 낮추는 방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알코올 도수를 3.5도 낮춘 만큼 맛이 더 부드러워졌지만 위스키 고유의 향과 맛을 즐기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타 제품과의 차별화는 확실히 성공을 거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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