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백호
호랑이는 우리나라 설화와 민담의 단골 손님이다. 때론 의로움과 용맹함으로, 때론 어수룩함과 친근함으로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어 왔다. 옛날 이야기는 으레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로 시작한다. 하마터면 웅녀(熊女)와 함께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불에 달군 돌을 떡으로 알고 먹거나 기름 바른 발로 나무를 오르는 아둔함도 있지만 은혜를 갚을 줄 알고, 위선자 북곽선생을 호되게 꾸짖는 산군자(山君子)이기도 하다.
삶의 지혜를 담은 속담과 경구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고, 호랑이 새끼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 호랑이와 관련된 지명도 호미곶 등 389개나 된다. 육당 최남선이 우리나라를 호담국(虎談國)이라 부른 배경이다.
올해가 바로 호랑이 해다. 특히 경인(庚寅)년의 천간(天干)은 오행(五行)으로 흰색과 금(金)을 뜻한다. 음양으론 양(陽)의 기운이다. 그래서 갈색 칡범이 아니라 백호의 해라고 한다.
백호는 청룡·주작·현무와 함께 신묘한 영물(靈物)이다. 하늘의 사방(四方)을 지키는 사신수(四神獸) 중 하나로 서쪽의 수호신이다. 백호가 상상 속의 동물과 같은 반열에 오른 것은 아마도 실제로 본 경우가 별로 없어서일 것이다. 백호는 유전자 변이로 생기는데, 시베리아산의 경우 10만 분의 1 확률로 태어난다고 한다. 동물원에서 보는 흰 가죽에 초콜릿색 무늬, 푸른 눈의 백호는 대부분 벵골산이다. 벵골산은 백호가 태어날 확률이 1000분의 1로 높아 그만큼 인공 번식도 쉽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14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역술인들은 같은 호랑이 해라도 경인년은 돈과 칼의 기운이 더욱 세다고 한다. 그래서 이 해에 태어난 남성은 무관과 공직에 많이 진출하고, 여성은 의사와 약사가 많다는 얘기다. 그래서인가. 국내 1000대 기업 최고경영자 가운데 122명이 범띠인데, 이 중 71명이 경인생이라고 한다. 한편으론 양극성이 강해 위아래가 바뀌는 급변의 시기로도 본다. 1950년의 6·25전쟁이나 1890년의 일제침탈 본격화를 예로 든다. 하지만 서기로 첫 경인년인 30년은 예수가 고난을 받고 세계 3대 종교의 하나로 거듭난 해다.
2010 경인년 역시 새 시대의 터닝 포인트다. 녹색성장과 함께 G20 정상회의도 주재하며 세계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국운이 ‘호랑이에 날개를 단 격’으로 힘차게 비상하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박종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