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청도반시(淸道盤枾)
한국 농촌의 가을 풍경을 상징하는 과일은 감나무이다. 감나무에 매달려 있는 잘 익은 홍시(紅枾)를 바라보노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녹음이 무성한 한여름에는 감이 있는지 없는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녹음에 감춰져서 소리 없이 있다. 그러다가 가을이 무르익으면 다른 나무 잎사귀들은 다 떨어졌는데, 유일하게 붉은색의 감만 저 높은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독야홍홍(獨也紅紅)’이다. 자기를 아무리 드러내지 않으려고 해도 때가 되면 만천하 사람들에게 자신의 내공(內功)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감나무에 매달려 있는 홍시를 볼 때마다 천시(天時)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서양 사람들도 감을 과일의 왕으로 대접하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 신(神)이 가장 좋아한 과일이 바로 감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감으로 유명한 지역이 경북의 상주(尙州)와 청도(淸道)이다. 상주는 감을 말린 곶감이 유명하고, 청도는 ‘청도반시(淸道盤枾)’가 유명하다. 청도는 전국 떫은 감 생산량의 30%를 차지한다. 청도에서 생산되는 감의 모양이 마치 소반[盤]처럼 둥글납작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조 명종 때 울진군수를 지냈던 박호(朴虎)가 울진에서 감 가지를 무 속에 보관해 가지고 와서 청도에 심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청도반시가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청도반시의 특징은 씨가 없어서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이었다. 청도는 지형적 특징으로 인해서 안개가 많이 끼는 지역이다. 전국 평균보다 30일간이나 안개 끼는 날이 더 많다고 한다. 이 기후조건 때문에 감의 암꽃이 많고 수꽃이 적어서 감의 씨가 잘 생기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청도반시가 최근에 더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감을 숙성시켜 와인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감 와인’이다. 색깔은 화이트 와인이면서 맛은 레드 와인의 떫은 맛이 난다. 말하자면 화이트와 레드를 합쳐 놓은 묘한 맛이다. 감 와인을 숙성시키는 장소도 흥미롭다. 1904년에 준공되었던 경산~청도 사이의 기차터널을 숙성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겨울에는 12도, 여름에는 16도의 온도를 유지하는 천혜의 숙성터널이다. ‘청도반시’가 ‘청도와인’으로 거듭난 셈이다.
(조용헌·goat13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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