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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년 世誼

라이프(life)/풍수지리

by 굴재사람 2009. 11. 2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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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살롱] 450년 世誼

 

 

영남에서 문집(文集)을 가장 많이 낸 집안을 꼽는다면 안동에 사는 ‘무실 유씨’ 집안이다. 이들은 전주 유씨(全州 柳氏)인데 안동의 수곡(水谷·물실)에서 오래 살아와서 그렇게 불린다. 이 집안은 16세기 중반부터 지금까지 95명이 900여 권의 문집을 냈다. 문집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므로 문중(門中)의 공의(公議)를 거쳐야 하고, 공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목판으로 찍은 문집을 낼 수가 없다. 따라서 문집을 많이 발간했다는 것은 그만큼 학자가 많이 배출되었다는 징표이다.

 

근래에도 이 집안 출신 교수와 학자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 ‘홍도전서(弘道全書)’ 20권을 낸 충남대 유정기 교수, 서울대 유안진 교수, 우파 논객으로 유명한 연세대 유석춘 교수, 이화여대 유철균 교수(소설가 이인화의 본명) 등등이 ‘무실 유씨’이다.


이 집안에서 이처럼 많은 학자가 배출된 사연을 추적하다 보면 문필봉(文筆峰)과 만나게 된다. 붓 끝처럼 삼각형으로 생긴 산봉우리를 문필봉이라고 부른다. 사대부 집안에서는 문필봉이 바라다보이는 집터나 묘터를 가장 선호하였다. 학자가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경북 안동시 임동면 수곡동에는 아기산(鵝岐山)이라고 하는 유명한 문필봉이 있다. 지금부터 450년 전쯤 아기산이 바라다보이는 자리에 무실 유씨인 유성(柳城)의 묘를 쓰면서부터 학자들이 배출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유성 이하 6대 주손(主孫)이 모두 여기에 묘를 쓰면서 대발(大發)하였다.


그런데 이 묏자리는 원래 유성의 장인인 청계(靑溪) 김진(金璡·1500~1580)이 쓰려고 잡아 놓은 자리였다고 한다. 그런데 사위가 먼저 죽자 이를 애석하게 여긴 김진이 그 자리를 내준 것이다. 김진은 안동에서 직언을 잘하기로 유명한 의성 김씨(義城 金氏) 집안의 중시조(中始祖)이며, 그의 아들 5명이 당시 과거에서 모두 합격하여 ‘오룡지가(五龍之家)’로 불리던 집안이기도 하다.


명당 자리를 선뜻 내준 의성 김씨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하여 무실 유씨들은 이후로 매년 청계의 제삿날인 4월 23일이 되면 커다란 대구포를 보내왔다. 1581년부터 현재까지 425년 동안 한 번도 빠진 일이 없다. 4세기 반 동안 변함없는 세의(世誼)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 집 같은 두 문중’이다.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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