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일- 정일근
풀잎 등에 맺히는 이슬 한 방울이 무거워진다
그 무게에 풀들은 땅으로 휘어지며 겸허해지고
땅은 씨앗들을 받아 품으며 그윽하게 깊어진다
뜨거웠던 황도(黃道)의 길도 서서히 식어가고
지구가 만든 그림자 속으로 달이 들어와 지워지듯
가을 속으로 걸어가면
세상살이 욕심도 무채색이 된다
어두워지기 전에 아궁이를 달구어놓아야겠고
가을별들 제자리 찾아와
착하게 앉았는지 헤아려보는 것이 나의 일,
밤이 오면 나는 시(詩)를 읽으며
조금씩 조금씩 쓸쓸해질 것이니
시(詩)를 읽는 소리
우주의 음률을 만드는 시간
가벼워지기 위해 나는
이슬처럼 무거워질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