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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맛코리’

라이프(life)/술

by 굴재사람 2009. 9. 14.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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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여담>
막걸리, ‘맛코리’
장편소설 ‘탁류’의 작가 백릉 채만식의 막걸리 예찬은 천상병의 시 ‘막걸리’ 못지않게 시원하다. ‘큼직한 사발에다 넘싯넘싯하게 그득 부은 놈을 처억 들이대고는 벌컥벌컥벌컥 한입에 주욱 다 마신다. 그러고는 진흙 묻은 손바닥으로 쓰윽 입을 씻고 나서 풋마늘대를 보리고추장에 꾹 찍어 입가심을 한다. 등에 착 달라붙은 배가 불끈 솟고 기운도 솟는다.’ 백릉의 수필 ‘불가음주 단연불가(不可飮酒 斷然不可)’ 중 배부르라고 먹는 막걸리의 일부분이다.

경제한파 때문인지 막걸리 관련 기사가 심심찮게 지면을 장식한다. 그런데 애주가들은 막걸리란 말에서부터 온기를 느끼기 시작한다. 대체 어원이 뭐기에…. 진주시장을 지낸 이상희 전 내무부·건설부 장관은 ‘마구, 함부로, 조잡하게 거른 술’이란 뜻을 담은 우리말 이름이라고 설명한다.(‘술·한국의 술문화 Ⅰ’·도서출판 선, 2009) 어원이 일러주듯, 막걸리는 잘 발효된 술의 맑은 윗물(청주)을 떠내지 않고 술 밑을 체에 밭아 그대로 걸러낸 술이다. 그러니 이름 속에 술의 제조 과정과 맛까지도 배어 있다.

옛 문헌에서는 막걸리의 음을 따라 ‘莫乞里’라고 쓰기도 하고, 탁배기를 음차해 ‘탁백이(濁白伊)’로 표기하기도 했다. 이름도 많아 시큼텁텁하고 들쩍지근한 술맛만큼이나 각양각색이다. 빛깔이 탁하다고 하여 탁주 또는 탁배기, 탁료, 재주, 회주라 하는데, 고관들이 마시는 맑은 술 청주가 아니라 서민들의 술임을 암시한다. 술빛이 쌀처럼 희대서 백주(白酒)라고 하는가 하면, 집집마다 담그니 가주요, 농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술이니 농주다. 일하는 사람들이 마신대서 사주(事酒), 맛이 좋지 못하고 소박한 술이란 뜻에서 겸손하게 박주(薄酒)라고도 한다. 그러다 보니 나라를 대표하게 되어 국주로 불리기도 한다. 특히 제주에서는 ‘국모의 술’ 모주(母酒)라고 한다.

마사무네, 곧 ‘정종(正宗)’의 원산지 일본에서도 지금 막걸리 붐이 일고 있다. 그런데 그 이름이 걸작이다. ‘맛코리(マッコリ)’ 다. 일본의 외래어 표기지만 ‘어’ 음가에 해당하는 철자가 없어 비슷한 가타카나로 적은 이름이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세계인에게 김치가 ‘기무치’로 소개될 뻔한 기억이다. 막걸리라는 한글 이름은 그런 전철을 밟지 않게 해야겠다.

[[황성규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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