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 김종철(1947~ ) -
꽃이 지고 있습니다
한 스무 해쯤 꽃 진 자리에
그냥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일 마음 같진 않지만
깨달음 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축복 받은 일인가 알게 되었습니다
한 순간 깨침에 꽃 피었다
가진 것 다 잃어버린
저기 저, 발가숭이 봄!
쯧쯧
혀끝에서 먼저 낙화합니다
그렇군요. 꽃이 지며 봄날이 가고 있군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깨닫는 순간, 그 아쉬움이라니. 발가숭이 순간, 그 가난함이라니. 꽃들의 일이란 그러나 참 깨끗하군요. 가야 할 때를 알고 군소리 없이 지는 꽃들 또 내년 봄 기약하게 하는군요. 그런데 인간사의 낙화란 글쎄, 쯧쯧 혀끝에서 먼저 지고 있나요.
이경철·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