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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글모음(writings)/좋은 시

by 굴재사람 2009. 4. 2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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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 김종철(1947~ ) -

꽃이 지고 있습니다

한 스무 해쯤 꽃 진 자리에

그냥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일 마음 같진 않지만

깨달음 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축복 받은 일인가 알게 되었습니다

한 순간 깨침에 꽃 피었다

가진 것 다 잃어버린

저기 저, 발가숭이 봄!

쯧쯧

혀끝에서 먼저 낙화합니다


그렇군요. 꽃이 지며 봄날이 가고 있군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깨닫는 순간, 그 아쉬움이라니. 발가숭이 순간, 그 가난함이라니. 꽃들의 일이란 그러나 참 깨끗하군요. 가야 할 때를 알고 군소리 없이 지는 꽃들 또 내년 봄 기약하게 하는군요. 그런데 인간사의 낙화란 글쎄, 쯧쯧 혀끝에서 먼저 지고 있나요.

 이경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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