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고 지내면서 심심치 않게 찾아와서 점심을 함께 하는 후배가 있다. 그런데 그 후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필자는 아, 오늘이 병(丙)자가 붙는 날인가 하고, 얼른 60 갑자가 적힌 달력을 본다. 거의 어김없이 그렇다.
특별한 의도 없이 누군가를 만나는 날은 반드시 자신을 상징하는 코드의 날이 되는데, 그 후배의 태어난 날이 병술(丙戌)일이니 병(丙)자 붙는 날에 전화를 해오는 것이다. 필자 역시 일간(日干)이 정화(丁火)이니 불이 불을 찾는 격, 바로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 친구를 찾아오는 것이다. 아무 사심 없이 그저 왕래하는 사이이니 진정한 친구라 할 것이다.
점심 때 만나는 것은 병(丙)일의 점심시간은 갑오(甲午). 을미(乙未)시가 되므로 병화 일간에게는 이 시각이 선배와 관련된 시간이 된다. 따라서 선배를 찾아오는 것이다. 정확한 날과 시에 찾아주니 이 후배가 여간 고맙지가 않다.
이런 사연을 늘어놓은 까닭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운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 얘기하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주체와 의식에 의해 결정을 내리고 살아가지만, 그런 결정을 내리는 배경에는 운(運)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운이란 움직인다는 뜻인데, 우리들은 그 유동적인 운에 따라 사람도 만나고 사업도 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하는 것이다. 앞서의 후배는 병화(丙火)가 들어오는 날에 여러 활동을 할 것이고, 필자 말고도 일간이 '불'인 여러 사람들과 교제를 하며 지내겠지만 그 중에 어떤 날은 필자가 생각나서 전화 약속을 하는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태어난 날, 즉 일간(日干)과 같은 날이 올 때는 스스로 사람을 만나는 일도 많지만 결정을 내리기에도 좋은 날이 된다. 자신의 코드와 같은 날은 '주체성'의 날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어떤 약속을 할 때는 그 날이 자신의 일간과 같은 날인지를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은 날이면 나중에 약속을 지키더라도 상당히 부담스런 가운데 마지못해 이행하게 될 것이다. 또는 핑계를 만들어서 펑크를 내게 되니 말이다.
즉, 당신이 갑목(甲木)의 날에 태어났다면 갑의 날의 약속을 하라는 얘기이다. 이 때 다른 날에 약속을 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알아보기로 한다.
갑목 일간이 사람이 을(乙)의 날에 약속을 했다면 그것은 상대가 너무 좋은 나머지 기분파적으로 약속을 해 놓고 나중에 다소 후회하게 된다.
병(丙)이나 정(丁)의 날에 약속을 했다면, 표명하지는 않았지만 그 속에는 내심 반대급부를 전제로 하는 약속이기에 그 반대급부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핑계를 만들게 된다. 물론 상대는 그것이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세상에 남을 속일 수 있다고 믿는 자가 있다면 그 자가 바보인 법이다.
무(戊)나 기(己)의 날에 약속을 했다면 그것은 표명되지 않은 상당한 계산을 깔고 있는 것이라, 나중에 그 사실을 상대가 인지하게 되면 카운터 오퍼를 받게 될 것이다.
경(庚)이나 신(辛)의 날에 약속을 했다면 부담스러워서 하기 싫은 것을 약속한 결과가 된다. 나중에 핑계를 만들기도 어렵고, 할 수 없이 이행할 경우 무척이나 어려운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임(壬)이나 계(癸)의 날에 약속을 했다면 이는 동정심이라든가 마음이 어질어서 약속을 하거나, 또는 판단 착오로 입밖에 나간 약속이 된다. 이 역시 나중에 다른 마음이 생겨서 어기거나 또는 큰 손해를 입게 된다.
그렇기에 필자는 사람의 말이나 약속을 쉽게 믿지 않는다. 의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나날의 운세에 따라 사람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는지, 또 시간이 지나면 운의 작용에 의해 얼마나 많은 마음의 변화가 생기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약속을 어길 때, 핑계를 만들게 된다. 좀 살다보면 핑계를 만들어내는 데는 누구나 도사나 달인이 된다. 지능지수(IQ)가 100이란 말은 머리를 좀 굴리면 백 가지 핑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잔머리를 굴려 핑계를 만들었지만, 상대 또한 지능지수가 100이라면 그것이 핑계라는 것을 백가지 각도에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가 진정 그 핑계를 믿는다고 여기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며, 그저 상대의 너그러움에 대해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얘기는 친구를 만나거나 어떤 약속, 또는 결정을 내릴 때의 운세(運勢)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어떤 달이 되거나 어떤 해가 될 때에는 우리의 인생에 엄청나고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앞서 임(壬)이나 계(癸)의 날에 약속이나 결정을 내릴 경우에 대해 언급했는데, 만일 그것이 해로 단위가 커진다면 그 결과는 상당한 손해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갑목 일간인 사람이 임(壬)의 해에 어떤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은 공부하거나 배우는 일 외에는 결코 좋은 결과를 바라기 어렵다. 그리고 계(癸)의 해에 월급쟁이가 가령 사업을 시작한다면 문자 그대로 수업료를 왕창 바치는 결과로 끝을 볼 것이다.
인생이란 이런 식으로 한 번 잘못 결정을 내리면 최소 6년에서 길게는 12년의 기간 동안 고초를 맛보게 된다. 이 경우 당사자가 가장이라면 그 처자식의 인생에도 커다란 부담을 줄 것이니 무섭고 두려운 것이다.
그런데 원래 갑목 일간인 사람에게 있어 임(壬)이나 계(癸)의 운은 이모저모 따져보면서 좀처럼 어떤 단안을 내리기가 어려운 운세이다. 아직 변수가 상당히 많아서 그런 것들의 윤곽이 나올 때까지는 좀 더 관망하게 되는 운세인 것이다. 이를 명리학에서는 인수(印綬)와 편인(偏印)의 운이라고 한다.
인수(印綬)란 문자 그대로 도장의 끈을 뜻한다. 그만큼 확실한 무엇을 보아야 행동에 들어갈 수 있는 운이고, 편인이란 공상과 잡념이 많아 좀처럼 대담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런 운에 중대한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연운(年運)과 월운(月運)의 상호작용 때문이다.
가령 갑목 일간인 사람이 임(壬)의 해가 되어 편인 운이면 대개 망설임이 많아서 장고(長考)를 하게 되는데, 이런 도중에 양력 8월이 되면 무신(戊申)월이 된다. 이 때 무토(戊土)가 연의 임수(壬水)를 상극(相剋)해버리면 갑자기 충동적으로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갑목 일간인 사람에게 무토는 편재(偏財)가 되어 장고 중에 갑자기 대박을 낼 수 있는 비상한 방법이 떠오르는 것이다. 물론 이는 착각이다.
이 경우 자신의 기운이 강한 사람은 아무리 좋은 방법이 떠오른다 해도 좀 더 시간을 두고 검증하는 기간을 거치는 법이다. 하지만, 마음이 여리거나 욕심이 지나친 사람은 그 비상한 방법이나 아이템이 너무도 좋아보여서 덜커덕 단안을 내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장고 끝에 악수(惡手)'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편인의 해에는 어떤 결정을 내리면 결과가 안 좋은 법인데, 사례를 들자면 한 없이 많다. 하나만 들면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으로 패망의 길로 들어섰는데, 그가 그 전쟁을 결심한 것은 바로 편인의 해였던 것이다.
또 한 가지 너무 쉽게 결정을 내려선 안 되는 연운(年運)을 들면 겁재의 해가 된다. 갑목 일간에게 있어 겁재(劫財)란 을목이 되는데 바로 을의 해에는 중대한 단안을 내릴 경우 대단히 조심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물론 사람의 사주팔자에 따라 겁재가 더 좋은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겁재의 해에는 지나치게 용맹, 과감해지는 폐단이 있다. '에잇, 까짓 거, 일단 저지르고 봐'하기 쉬운 것이다.
이런 경우 정말이지 일은 대 성공으로 끝을 보든지 아니면 폭삭 망하는 양 극단의 결과를 보게 된다.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한 것이기에 요행이 따르면 과감한 수가 통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대가를 치르는 법이다. 과거 천하의 대재벌 정주영 씨도 말년에 이런 우를 범한 바람에 말년에 고생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으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것이 사례이다. 그 이후 정 회장의 운은 하향 일로였다 하겠다.
결론을 맺자면, 중대한 결정은 자신의 일간과 같은 날이나 월, 그리고 해에 하는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리고 편인의 운이나 겁재의 운에는 사소한 일이면 교훈 삼으면 되겠지만 특히 해에서 그런 운을 맞이했을 때에는 인생 전체의 궤도를 빗나가게 만드는 엄중한 일이기에 경거망동을 삼가라는 것이다.
/김태규 명리학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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