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風)은 묘한 것이다.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고, 그물에도 걸리지 않지만 영향은 분명히 미친다는 점에서 그렇다.
고대 인도인들은 이 바람을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이라는 4대(大)에 포함시켰다.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4대’로 각각 나뉘어 흩어져 버린다고 생각했는데, 그 중 하나는 바람이다.
명상의 방법 가운데는 ‘바람명상’도 있다.
태풍이 몰아칠 때 제주도의 용두암 앞에서 온 몸으로 바람을 맞으면 막힌 가슴이 뚫리는 것 같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바람을 종류별로 나눠 생각했다고 한다.
그 사람이 출생할 때 서풍이 불면 검소한 사람이 태어나고,
남풍이 불면 주변에 사람들이 많은 사치스러운 사람이 태어나고,
북풍이 불면 전사(戰士)가 태어나고,
동풍이 불면 부자가 태어나고,
바람이 없는 무풍일(無風日)에는 바보가 태어난다고 여겼다.
한국 사람들은 바람 중에서 서북풍(西北風)을 꺼렸다.
풍수에서 가장 피하는 방향이 바로 서북쪽이다.
이쪽에서 찬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이었다.
특히 겨울에 서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문풍지를 뚫고 들어와 추위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풍수에서는 서북쪽 방향을 꺼린다.
서북쪽은 지관들이 사용하는 지남침인 패철(佩鐵)상에서 놓고 보면 건방(乾方)에 해당한다.
건방에서 오는 바람, 즉 서북풍을 살풍(殺風)이라 부르기도 했다.
터를 볼 때에도 서북쪽이 뻥 열려 있는 지세는 가급적 피했다.
그 대신 건방에 아름답게 생긴 산봉우리가 있으면 상서롭게 보았다.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강원도 건봉사(乾鳳寺)의 지세가 이런 경우이다.
부득이하게 서북쪽이 열려 있는 장소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이쪽에 일부러 나무를 심었다.
바람을 막기 위해서이다.
이런 용도의 나무숲을 비보림(裨補林)이라고 한다.
안동 하회마을의 냇가에 있는 소나무 숲이 이런 비보림에 해당한다.
봄만 되면 한반도를 습격하는 황사도 일종의 서북풍이다.
그 발원지는 한반도의 서북쪽 방향에 있는 몽골과 고비사막 일대로 알려져 있다.
황사라고 하는 ‘서북 살풍’을 막으려면 이쪽에 하회마을 같은 비보림이라도 조성해야 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