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이매창(妓生 李梅窓)
[생졸년] 1573년(선조 6)~1610년(광해군 2) =향년 38세
조선 선조 때 활동한 전북 부안의 관기로써 조선의 3대 기생(妓生)중 한 사람인 이매창(李梅窓)의 생애와 1668년(현종 9) 12월에 부안현의 아전들이 전송(傳誦)하던 매창의 한시 수백 수 중에 그가 남긴 시 단편 58수를 모아 편찬한 시집(詩集) 『매창집(梅窓集)』의 원문을 보고 직접 해석해 보았습니다.
□부안 출신의 기생, 매창
매창은 본명이 향금(香今)이고, 자는 천향(天香)이며, 호가 매창이다. 계생이라고도 하였다.
1573년(선조 6) 부안현의 아전 이탕종(李湯從)의 딸로 태어났다.
『매창집(梅窓集)』의 발문을 보면 그녀의 출생에 관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계생(桂生)의 자(字)는 천향(天香)이다. 스스로 매창이라고 했다. 부안현의 아전 이탕종(李湯從)의 딸이다.
만력(萬曆) 계유년(癸酉年,1573)에 나서 경술년(庚戌年,1610)에 죽었으니, 사망 당시 나이가 서른여덟이었다.
평생토록 노래를 잘했다. 지은 시(詩) 수백 편이 그 당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지금은 거의 흩어져 사라졌다.
숭정(崇禎) 후 무신년(戊申年,1668) 10월에 아전들이 읊으면서 전하던 여러 형태의 詩 58수를 구해 개암사(開巖寺)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했다. 《매창집(매창전집), 부안문화원》, 2010 -
매창이 기생으로 살아간 것으로 보아 매창의 어머니는 부안현에 소속된 관비(官婢)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개 기생은 관비 출신 중에서 충원되었기 때문이다.
관아에 속한 기생은 ‘기안(妓案: 관기 명부)’에 올라 관리를 받았다. 그녀들의 이름은 호방(戶房)에서 출석을 점검할 때 부르기 편하도록 지어졌는데, 매창은 계유년(癸酉年)에 태어났으므로 계생(癸生)ㆍ계생(桂生)ㆍ계랑(癸娘)ㆍ계랑(桂娘)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매창은 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매창집》에 적혀 있듯이 스스로 ‘매창(梅窓)’이라고 자호(自號)했다.
조선시대의 기생들은 궁중이나 관아의 연회에서 흥을 돋우는 역할을 담당하여 ‘여악(女樂)’이라고도 불렸다.
서울 기생들은 장악원(掌樂院)에서 각종 악기와 가무를 배웠고, 지방 관아 기생들은 교방을 통해 이를 습득했다.
또한, 기생들은 주로 양반들과 어울렸기 때문에 문장과 서화(書畵) 학습도 중요하게 시행하였다.
그녀들은 갈고 닦은 실력으로 양반들과 함께 시를 주고받기도 했다.
19세기의 학자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詩를 잘 지은 ‘시기(詩妓)’를 아래와 같이 기록하면서 매창을 언급하였다.
송계 권응인의 《패관잡기》에,
“우리나라 여자들의 시로 말하면 삼국시대에는 알려진 것이 없고 고려시대에 이르러 용성의 창기(娼妓) 우돌(于咄), 팽원의 창기 동인홍(動人紅)만이 詩를 지을 줄 알았다고 하나 전하는 것은 없다.
그리고 송경(松京)의 삼절(三絶)로 유명했던 황진(黃眞), 부안(扶安) 기생 매창(梅窓)ㆍ계생(桂生)ㆍ추향(秋香), 호서 기생 설죽(雪竹)ㆍ취선(翠仙), 진주 기생 승이교(勝二喬), 부안 기생 복랑(福娘), 성천 기생 일지홍(一枝紅) 등은 모두 詩에 능하기로 유명하다.”하였다.
창기(娼妓) 로서 시에 능하다는 것은 대단히 뛰어난 일이기 때문에 대략 언급한 바이다.
- 이규경, 《오주연문장전산고》 경사편 5 - 논사류1 《화동기원변증설(華東妓源辨證說)》 -
황진이ㆍ매창ㆍ일지홍 등의 기생들은 웬만한 시인 가객 못지않은 뛰어난 글재주를 보여주었다.
특히, 서경덕과 교유한 황진이나 이귀ㆍ허균 등과 교유한 매창의 경우처럼 당대 최고의 인물들과 교유하며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만큼 그녀들의 재주와 문학적 소양이 뛰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비록 천민 신분이었지만 기생들은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양반들과 풍류를 나누었고, 서로의 애틋한 감정을 시로 남기기도 했다.
□매창과 유희경, 그 만남과 사랑
매창에게 사랑이 찾아온 것은 그녀의 나이 스무 살 무렵이었다.
그런데 그가 사랑했던 남자는 스물여덟 살이나 연상인데다가 천민 출신인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 1545년(인종 1)~1636(인조 14)」이었다. 뭇 양반들의 사랑을 받으며 명성이 높았던 매창이 신분이 높지 않았던 유희경에게 강하게 끌렸던 것은 천민 출신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점과 둘 다 詩에 능해 시로 대화가 가능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유희경은 서경덕의 문인인 박순(朴淳)으로부터 당시(唐詩)를 배웠으며, 중인 신분을 가진 시인들과 함께 풍월향도(風月香徒)라는 모임을 만들어 주도했다. 여기에는 천민 출신 시인 백대붕(白大鵬)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유희경과 백대붕은 함께 시를 잘 짓기로 소문이 퍼져 ‘유백(劉白)’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래서 매창도 이들의 명성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젊은 시절 부안을 지날 때였다. 이름난 기생 계생이 유희경이 서울의 시객(詩客)이라는 말을 듣고 물었다. “유희경과 백대붕(白大鵬) 가운데 누구신지요?” 대개 그와 백대붕의 이름이 먼 지역까지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일찍이 기생을 가까이하지 않다가 이에 이르러 파계를 했다.
시로 풍류로써 통했기 때문이다. 계생 역시 시를 잘 지었는데, 《매창집》 이 간행되었다.
- 유희경, 《촌은집》 , <행록(남학명 찬)> -
위의 글은 남학명(南鶴鳴)의 <행록(行錄)> 중 일부로, 유희경과 매창의 만남을 보여준다.
남도를 여행하던 유희경은 매창을 찾아온다. 유희경은 그때까지 뭇 여성을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 매창에게는 큰 관심을 보였다. 매창이 이미 유희경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유희경 또한 명성이 자자한 매창에 대해 알고 있었음은 그녀에게 지어준 詩 <계랑에게(贈癸娘)>를 보면 알 수 있다.
남쪽 지방 계랑의 이름을 일찍이 들었는데,
시와 노래 솜씨가 서울에까지 울리더군.
오늘 그 진면목을 보고 나니,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온 듯하구나.
- 유희경, 《촌은집》, 권 1, <증계랑(贈癸娘)> -
이 詩에서도 나타나듯이 매창은 시를 짓고 노래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유희경은 부안으로 내려와 직접 매창을 보고 나서 그 소문이 떠도는 소문만이 아님을 알았다.
그는 매창의 매력에 흠뻑 빠져 마치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다고 표현했다.
시에 능통했던 유희경과 매창. 둘은 서로를 사랑하는 감정을 시를 통해 주고받았다.
유희경의 문집에 실려 있는 시들 중에 매창을 생각하며 지은 시는 7편으로 확인된다.
유희경은 28세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매창을 연인처럼 무척이나 사랑했던 듯하다.
매창이 삐쳐서인지 얼굴을 찡그렸을 때 자신에게 선약(仙藥) 하나가 있어 고운 얼굴의 찡그린 흔적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그것을 주고 싶다고 하였다. 찡그린 모습까지도 귀여워하며 그녀를 달래주고자 하는 유희경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유희경은 창덕궁(昌德宮) 옆을 흐르는 계곡 옆에 작은 집을 짓고 이곳을 침류대(枕流臺)라 하였다.
당시 침류대에는 이수광(李晬光) ㆍ신흠(申欽) ㆍ허균(許筠) ㆍ유몽인(柳夢寅) 등 당대의 명사들이 모여들었으며, 유희경은 침류대의 주인으로 자처하였다. 유희경에 대해 허균은 “사람됨이 청수(淸秀)하고 신중하며 충심으로 주인을 섬기고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기니 사대부들이 그를 사랑하는 이가 많았다.”고 평했었다.
조우인(曺友仁)은 “당시 사대부들조차 예법에 관한 한 (유희경을) 따라잡을 자가 드물었다”고 할 만큼 유희경은 예법에 아주 밝았던 인물이었다. 부안에서 짧은 만남을 가졌지만, 이별 후에도 두 사람은 사랑을 잊지 못하고 서로를 무척이나 그리워했다.
만나지 못하면 못할수록 그리움은 더욱 커지는 걸까?
유희경은 서울에 있어 부안에 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시로 읊었다.
“그대의 집은 낭주에 있고 내 집은 서울에 있어,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볼 수 없으니,
오동잎에 떨어지는 빗소리에도 애가 끊어지누나”
그리고 길을 가다가도 문득 매창을 그리워하며 시를 짓기도 했다.
유희경이 매창을 그리워했듯이 매창 또한 유희경을 그리워했다.
“이화우(梨花雨: 비처럼 휘날리는 배꽃) 흩뿌릴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매창이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하고 읊은 시조는 바로 유희경을 생각하며 지은 것이다.
이 글은 1876년(고종 13) 박효관과 안민영이 편찬한 《가곡원류(歌曲源流)》에 실려 있는데, 시조 아래 주석에 “촌은이 서울로 돌아간 뒤 소식이 없었다. 이에 이 노래를 지어 수절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매창이 유희경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조임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은 첫 만남이 있은 지 15년이 지나 다시 만났지만 너무 짧은 재회의 시간이었다.
함께 시를 논했던 유희경은 다시 서울로 돌아갔고, 이것은 이들에게 영원한 이별이 되었다.
매창이 3년 뒤인 1610년(광해군 2)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유희경은 “정미「丁未: 1607년(선조 40)」에 다행히도 다시 만나 즐겼는데 이제는 슬픈 눈물 옷을 함빡 적시누나”하며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이름난 기생 매창과 천민 출신의 유희경. 두 연인은 신분과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애틋한 사랑을 나누었다. 만남은 짧았지만 그들의 가슴 속에 품은 사랑은 시를 통해 평생을 이어갈 수 있었다.
두 사람에게는 詩라는 공통의 언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균을 통해 문인들과 소통하다.
↑명기 이매창 묘/매창공원 주소 : 전북 부안군 부안읍 매창로 89(지번: 부안읍 서외리 566)
이매창의 묘(전북 부안군 부안읍 소재. 전라북도 기념물 제65호). 황진이에 버금가는 명기이자 조선 여류 시인의 한 사람으로 꼽힌 그녀는 서른 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와 교류하던 문인들, 특히 허균은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 글을 남겼다.
매창은 1600년을 전후하여 많은 인사들과 교류하며 다른 사람들의 문헌에도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허균(許筠, 1569(선조 2)~1618(광해 10)과의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대 최고의 시 비평가였던 허균은 매창의 재주를 높이 평가하였고, 이에 많은 문인들이 매창을 찾아 시를 주고받으려 하였다.
시를 주고받은 것으로 확인된 인물들로는 권필(權韠)ㆍ심광세(沈光世)ㆍ임서(林㥠)ㆍ한준겸(韓浚謙) 등이 있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문인들과 시를 주고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는 이제 명실상부하게 조선 최고의 시기(詩妓)로 부상하였다.
허균과 매창이 처음 만난 것은 1601년(선조 34)이었다. 그해 7월, 허균은 전운판관(轉運判官)이 되어 조운(漕運)을 감독하기 위해 전라도로 내려왔다. 이때, 비가 많이 내려 부안에 머물게 되었고, 이곳에서 허균은 매창을 만나게 되었다. 그 당시의 상황이 허균의 문집에 남아 있다.
23일(임자). 부안에 도착하니 비가 몹시 내려 머물기로 하였다. 고홍달이 인사를 왔다.
창기(倡妓) 계생(桂生)은 이옥여「李玉汝: 이귀(李貴)의 자」의 정인(情人)이다.
거문고를 뜯으며 시를 읊는데 생김새는 시원치 않으나 재주와 정감이 있어 함께 이야기 할만하여 종일토록 술잔을 놓고 시를 읊으며 서로 화답하였다. 밤에는 계생의 조카를 침소에 들였으니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 허균, 《성소부부고》 권 18, 문부 15, 기행(紀行) 上 <조관기행(漕官紀行)> -
허균은 매창의 외모를 ‘불양(不揚)’이라고 설명했다. 즉, 생김새가 뛰어났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그러나 허균은 재주와 정감이 있는 매창과 대화하면서 그 매력에 빠졌고, 종일토록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허균은 매창을 이귀의 정인(情人)이라고 했는데, 이귀는 1599년(선조 32) 부안과 지척인 김제군수로 내려왔다가 매창과 인연을 맺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처럼 매창은 부안을 비롯한 인근 주변 지역에 내려오는 문인들과 많은 만남을 가졌고, 각종 행사나 연회에 러브콜을 받았다.
허균은 후에 부안으로 내려와 우반동(愚磻洞)에 정사암을 수리하여 그곳에 머물렀다.
이때 매창과 허균은 빈번하게 만나 함께 시를 짓기도 하고 불교와 도교도 공부했다.
허균은 당시 이단으로 지목되던 불교ㆍ도교는 물론 서학(西學)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매창 또한 이러한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매창의 시 <月明庵에 올라>에 신선 ‘적송자(赤松子)’를 언급한 것과 허균이 서울에 올라간 후 매창에게 “요즘도 참선(參禪)을 하는가? 그리운 정이 간절하구려.” 라고 보낸 편지를 통해서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매창은 허균을 통해 허균의 누나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의 시도 접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허난설헌은 꽃다운 나이인 27세(1589)에 요절하였고 동생 허균은 친정에 남아 흩어져 있던 누이의 시와 자신이 외우고 있던 시를 모아 《난설헌고(蘭雪軒藁)》를 만들었다. 그리고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에게 《난설헌고》의 초고를 전달하여 1606년(선조 39) 중국에서도 간행되게 하였다.
허균은 누나 허난설헌의 시를 아껴 그것을 간행한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매창은 이 책을 얻어서 읽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매창집》에 실린 시들 중 서너 편은 허난설헌의 시와 유사하다. 이외에 매창과 돈독한 사이를 유지한 인물들 중에는 한준겸(韓浚謙)과 권필(權韠)도 있었다.
한준겸은 매창에게 <노래하는 기생 계생에게 주며[贈歌妓癸生]>라는 시를 건넸으며,
매창을 당나라 중기의 이름난 기생인 설도(薛濤)에 비유하기도 했다.
권필은 매창에게 주는 시에 <여자 친구 천향에게 주며[贈天香女伴]>라고 적을 만큼 친근감을 표현하였다.
매창에게 있어서 유희경ㆍ허균ㆍ이귀ㆍ한준겸 등 당대의 문사들은 마음을 함께 나누며 시를 노래하는 친구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매창의 삶은 너무 짧았다. 서른여덟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매창은 평소에 “나는 거문고와 시가 참말 좋아요. 이후에 내가 죽으면 거문고를 함께 묻어주세요.”라고 했으며, 그 말에 따라 그녀의 무덤에 거문고를 함께 묻었다고 전해진다. 허균은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계랑(桂娘)의 죽음을 슬퍼하다.
"계생(桂生)은 부안 기생인데, 시에 능하고 글도 이해하며 또 노래와 거문고도 잘했다.
그러나 천성이 고고하고 개결(介潔: 깨끗하고 굳음)하여 음탕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그 재주를 사랑하여 교분이 막역하였으며, 비록 담소하고 가까이 지냈지만 난(亂)의 경에는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가도 변하지 않았다. 지금 그 죽음을 듣고 한 차례 눈물을 뿌리고서 율시 2수를 지어 슬퍼한다."
- 허균, 《성소부부고》 권2, 시부 2, <병한잡술(病閑雜述)>
천성이 고고하고 개결하여 음탕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매창. 그녀는 시를 매개로 하여 당대의 학자들과 깊은 교유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기생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글재주로 당당하게 뭇 양반 학자들과 시를 논했던 매창의 흔적은 그녀의 시비(詩碑)가 남아있는 전북 부안(扶安)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유희경「劉希慶, 1545(인종 1)∼1636인조 14)」
조선 선조 때의 현사(賢士). 자는 응길(應吉), 호는 촌은(村). 본관은 강화(江華). 13세에 아버지를 잃고 묘를 지켜 하루도 떠나지 않으므로 이웃 승려가 토막을 지어 주었고 어머니 병간호도 극진했다. 일찍 남언경(南彦經)에게 문공의 가례를 배워 모든 예문에 밝았으며, 특히 상례(喪禮)에 밝았으므로 국상(國喪)이나 평민의 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에게 문의하였다.
임진왜란 때 크게 분개하여 의사(義士)들을 모아 군사를 도왔고, 광해군 때 이이첨(李爾瞻)이 폐모(廢母)의 소를 올리기를 간청하였으나 거절하고 절교(絶交)하였다. 인조반정 후 인조는 절의(節義)를 가상히 여겨 승자(陞資)해 주었다.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승진하고 93세에 사망했다. 아들 면민(勉民)의 원종(原從)의 훈으로써 한성 판윤(漢城判尹)이 추증되었다. 시는 한가롭고 담담하여 당시(唐詩)에 가깝다는 평을 듣는다.
허균(許筠)의『성수시화(惺叟詩話)』를 살펴보면 유희경을 천인으로서 한시에 능통한 사람으로 꼽았다.
천민 출신이나 한시를 잘 지어 당시의 사대부들과 교유했으며 자기 집 뒤의 시냇가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들어 ‘침류대(枕流臺)’라고 이름 짓고 그곳에서 유명 문인들과 시로써 화답했다. 그때에 서로 주고받은 시를 모아 《침류대시첩(枕流臺詩帖)》을 만들었다. 문집으로 《촌은집(村隱集)》3권이 전하며 그 밖의 저서로 《상례초(喪禮抄)》가 있다.
□매창(梅窓)의 시(詩)
□매창집(梅窓集) 발문(跋文)
계생(桂生)의 자는 천향(天香)인데 스스로 매창이라고 호를 지어 불렀다.
부안현(扶安縣) 아전(衙前)이던 이탕종(李湯從)의 딸이다.
만력 계유년(1573)에 나서 경술년(1610)에 죽으니 나이 서른여덟이었다.
평생 노래 부르기와 시 읊기를 잘했다. 시 수백 편이 한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더니 지금은 거의 흩어져 없어졌다. 숭정 후 무신년(1668년 현종 9) 10월에 아전들이 외며 전하던 각 체(體)의 시 58수를 얻어 개암사에서 목판에 새기다. 무신년 12월 개암사에서 개간하다.
↑매창집(梅窓集), 미국 하바드대학교 엔칭연구소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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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별(贈別: 이별하며 드림) - 이매창(李梅窓)
我有古秦箏(아유고진쟁) / 나에게 진나라 거문고 있어
一彈百感生(일탄백감생) / 한번 타면 온갖 느낌 일어난다
世無知此曲(세무지차곡) / 세상에는 이 곡조 아는 사람 없어
遙和緱山箏(요화구산쟁) / 멀리 구산 쟁에만 화답하노라
※ 緱山(구산) : 왕자교(王子喬). 주영왕(周靈王)의 태자 진(晉). 피리를 잘 불어 鳳(봉)의 울음 소리를 냈고, 신선의 도를
닦아 구산(緱山)에서 학을 타고 피리[생황]을 불며 하늘로 올라갔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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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恨(자한: 나를 한탄하며) - 이매창(李梅窓)
春冷補寒衣(춘냉보한의) / 봄날이 차서 엷은 옷을 꿰매는데
紗窓日照時(사창일조시) / 사창에는 햇빛이 비치고 있네
低頭信手處(저두신수처) / 머리 숙여 손길 가는 대로 맡긴 채
珠淚滴針絲(주루적침사) / 구슬같은 눈물이 실과 바늘 적시누나
※ 紗窓(사창) : 깁(고운 견직물)으로 바른 창(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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彈琴(탄금) 거문고를 타면서 - 이매창(李梅窓)
幾歲鳴風雨(기세명풍우) / 몇 해나 비바람을 울렸던가?
今來一短琴(금래일단금) / 여지껏 지녀 온 한 작은 거문고
莫彈孤鸞曲(막탄고난곡) / 고난곡(孤鸞曲)을 타지마라.
終作白頭吟(종작백두음) / 끝내 백두음 가락이 지어진다네.
◇白頭吟(백두음) : 백발의 노래. 전한(前漢)의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부인 탁문군(卓文君)의 작(作)이라고 알려진 노래로
상여가 첩을 얻으려고 하자 이 시를 지어 결별의 뜻을 밝혀 상여가 첩을 얻는 것을 단념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한대(漢代)의 민가(民歌)이며 탁문군과는 무관하다. 남자가 변심하여 여자가 헤어질 결의를 읊은 가운데
단념하지 못하는 고뇌의 기색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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尋眞(심진) / 진경(眞境)을 찾아서
이매창(李梅窓)
其 一
可憐東海水(가련동해수) / 가련키도 해라 동해의 물이여!
何時西北流(하시서북류) / 그 언제 서북으로 흘러 볼 건가?
停舟歌一曲(정주가일곡) / 배 멈추고 노래 한 가락 부르며,
把酒憶舊遊(파주억구유) / 술잔을 들고 옛 놀던 일 생각하네.
其二
岩下繫蘭舟(암하계난주) / 바위 아래 목란 배를 매어두고,
耽看碧玉流(탐간벽옥류) / 옥같이 푸른 물 바라보며 즐기네,
千年名勝地(천년명승지) / 천년의 명승지에서
沙鳥等閑遊(사조등한유) / 모래밭 물새들이 한가로이 노니네.
其三
遠山浮翠色(원산부취색) / 먼 산은 푸른 빛에 떠 있고,
柳岸暗烟霞(유안암연하) / 버드나무 언덕은 안개 속에 잠겼네.
何處靑旗在(하처청기재) / 푸른 깃발 있는 곳 어디인가?
漁舟近杏花(어주근행화) / 고깃배가 술집으로 다가가네.
◇蘭舟(난주) : 목련(木蓮)으로 만든 아름다운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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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思 봄날의 그리움
東風三月時 때가 동풍이 부는 삼월이니
處處落花飛 곳곳마다 꽃이 떨어져 흩날리네.
綠綺相思曲 님 그리는 곡 연주하여도
江南人未歸 강남의 그 사람 돌아오시질 않네.
* 綠綺(녹기) : 중국 전한시대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연주하던 중국 4대 명금 중 하나.
自傷 혼자서 마음 상해라
京洛三年夢 서울을 삼년이나 꿈꾸었는데,
湖南又一春 호남은 또다시 한철 봄이네.
黃金移古意 황금에 옛 마음이 떠나버려
中夜獨傷神 한밤중 홀로 마음 상했네.
洛下風流客 서울에서 내려 온 풍류객과
淸談交契長 맑은 얘기로 맺은 언약 오랜데,
今日飜成別 오늘 홀연히 작별하니
離盃暗斷腸 이별의 술잔에 남몰래 애간장이 끊어지네.
一片彩雲夢 한 조각 꽃구름을 꿈꾸다
覺來萬念差 깨고 나니 온갖 생각 스치는데,
陽臺何處是 즐기던 곳 무릇 어느 곳인가?
日暮暗愁多 날 저무니 남몰래 수심만 가득하네.
驚覺夢邯鄲 부귀영화 꿈꾸다 놀라서 깨니
沈吟行路難 속 깊이 생각하며 사는 길 어렵네.
我家樑上燕 내 집 기둥 위 제비는
應喚主人還 응당 주인이 돌아오라 지저귀네.
* 京洛(경락) : 한(漢)나라와 당(唐)나라 때의 서울인 낙양(洛陽)을 말하나 일반적으로 서울을 나타내는
말로 많이 쓰임.
* 彩雲(채운) : 꽃 구름. 여러 빛깔로 아롱진 고운 구름
* 陽臺(양대) : ①해가 잘 비치는 대 ②남녀(男女)의 정교(情交)를 의미(意味)
* 暗愁(암수) : 남모르게 품은 수심(愁心). 남이 모르는 걱정거리
* 邯鄲之夢(한단지몽) :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人生)의 부귀영화(富貴榮華)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虛無)함을 이르는 말.
* 沈吟(침음) : 속으로 깊이 생각함.
江臺卽事 강가 정자에 일어난 일
四野秋光好 사방 들판에 가을빛이 좋아
獨登江上臺 혼자서 강 위 정자에 올랐네.
風流何處客 어디서 온 풍류객인지
携酒訪余來 술병을 들고 날 찾아오네.
* 卽事(즉사) : 눈앞 사물을 즉흥으로 읊음
自恨 스스로 한탄하다.
東風一夜雨 동풍에 밤새 비가 오더니
柳與梅爭春 버들과 매화가 봄을 다투네.
對此最難堪 이를 보며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樽前惜別人 술잔 앞에 두고 애석하세 헤어진 님 생각이네.
含情還不語 마음속에 품은 정 다시 말하지 못해
如夢復如癡 꿈을 꾸는 듯하다가 다시 바보가 된 듯하네.
綠綺江南曲 거문고로 강남곡을 연주 하여도,
無人問所思 이내 심사를 물어 볼 사람 없네.
翠暗籠烟柳 안개낀 버들이 어스럼한 푸른빛이 쌓이고
紅迷霧壓花 붉고 희미한 안개가 꽃을 짓누르는데,
山歌遙響處 민요 부르는 노래 멀리서 들려오는데,
漁笛夕陽斜 어부의 피리소리 석양에 기우네.
* 含情(함정) : 마음속에) 정[사랑]을 품다. (표정과 태도에서) 정[애정]이 어리다[드러나다·흐르다].
* 江南曲(강남곡) : 강남의 풍속 또는 여인의 연정을 그린 악부. 양나라 무제가 창시한 이래 역대
문인들이 애용한 주제이다.
* 山歌(산가) : (산과 들에서 일을 할 때 부르는) 민간 가곡.
登御水臺 어수대에 올라서
王在千年寺 왕이 계신던 천년 사찰에
空餘御水臺 부질없이 어수대만 남았네.
往事憑誰問 지나간 일들을 누구에게 물을까?
臨風喚鶴來 바람에 학이나 오라 부를까?
* 御水臺(어수대) : 변산 내변산에 있는 폭포이름.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거기서 다녀갔다고 함.
↑어수대(御水臺)와 병풍바위
병중(病中) / 병중에
不是傷春病 봄날 탓에 병이 난 게 아니라
只因憶玉郞 오로지 님이 그리워서라네.
塵寰多苦累 어수선한 세상에 괴로움이 많은데,
孤鶴未歸情 외로운 학은 아직 고향에 돌아오질 않네.
誤被浮虛說 그릇된 소문이 나돌면서
還爲衆口喧 도리어 여러 입에 오르내리는데,
空將愁與恨 속절없는 시름과 한으로
抱病掩柴門 병을 안고 사립문을 가리리.
* 玉郞(옥랑) : 여자가 사랑하는 임을 부르던 애칭(愛稱).
* 塵寰(진환) : 티끌세상
* 苦累(고루) : ① (일 따위가) 고되다 ② (일을) 고생스럽게 생각하다 ③ 힘이 들다 ④ 괴로워하다
* 歸情(귀정) : 귀향(歸鄕)
* 虛說(허설) : 거짓말. 빈말
* 抱病(포병) : 병을 늘 지님. 몸에 늘 지닌 병(病)
贈醉客 취하신 손님께 드림
醉客執羅衫 취한 손님이 윗옷을 잡으니
羅衫隨手裂 윗옷이 손 따라 찢어지네.
不惜一羅衫 저고리 하나쯤 아깝지 않지만
但恐恩情絶 은애(恩愛)하는 마음 끊어질까 두렵네.
* 羅衫(나삼) : ①얇고 가벼운 비단(緋緞)으로 지은 웃옷이나 적삼. 여름 옷감으로 알맞음.
* 恩情(은정) : 은혜(恩惠)로 사랑하는 마음. 은애(恩愛)의 마음
고인(故人)/ 옛 사람
松栢芳盟日 송백(松栢)으로 빛나자 맹세했던 날
恩情與海深 은애(恩愛)하는 마음 바다 같이 깊었는데,
江南靑鳥斷 강남의 소식이 끊어졌으니,
中夜獨傷心 한밤중 홀로 마음 상하네.
* 靑鳥(청조) : ①고지새 ②파랑새 ③반가운 使者(사자) 또는 편지(便紙)
泛舟 배 띄우고
參差山影倒江波 산 그림자 들쑥날쑥 강 물결에 어리고
垂柳千絲掩酒家 드리운 수양버들 수많은 가지 주막을 가렸네.
輕浪風生眠鷺起 잔물결 이는 바람에 잠자던 백로가 고개 들고
漁舟人語隔烟霞 고기잡이배 사람소리 안개 속에 들려오네.
鞦韆 그네타기
兩兩佳人學半仙 아름다운 두 사람이 그네를 배우는가?
綠楊陰裡競鞦韆 푸른 버들 그늘 밑에서 다투어 그네를 타네.
佩環遙響浮雲外 허리에 찬 노리개가 멀리 구름 너머 울리니,
却訝乘龍上碧天 마치 용을 타고 푸른 하늘에 오르는 듯하네.
* 鞦韆(추천) : 그네. 민속놀이의 하나. 또는 그 놀이 기구(器具)
* 兩兩(양양) : 둘씩 또는 둘이 모두
* 半仙(반선) : 그네놀이의 다른 별칭.
* 却訝(각아) : 의아스럽다고 생각됨.
春愁 봄날의 근심
長堤春草色凄凄 긴 뚝의 봄 풀빛이 슬프고 처량하니
舊客還來思欲迷 옛 손님 다시 오시다 길을 잃었나 생각되네.
故國繁華同樂處 예전에 같이 즐기던 화려한 곳에
滿山明月杜鵑啼 온 산은 달 밝고 두견새만 우네.
曾年此夕瑤池會 지난해 오늘 저녁 아름다운 모임에서
我是樽前歌舞人 나는 술잔 앞에 춤추며 노래 부르는 사람이었지.
宣城舊主今安在 명승(名勝)의 옛 주인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一砌殘花昔日春 섬돌에 남아있는 꽃 그 옛날의 봄이네.
* 凄凄(처처) : 1.슬프고 처량하다. 처연(悽然)하다. 2.춥다. 차갑다. 쌀쌀하다.
* 滿山(만산) : 온산
* 瑤池(요지) : 구슬의 연못. 신선이 산다는 곳임 ②중국(中國) 곤륜산에 있다는 못. 주(周)나라
목왕이 서왕모를 만났다고 하는 곳.
* 宣城(선성) : 중국(中國) 안휘성(安徽省) 남동쪽에 있는 도시(都市)로 옛부터 명승지가 많으며,
근교에 있는 경정산(敬亭山)은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시를 읊던 곳이다.
* 安在(안재) : ① 건재(健在)하다 ② 어디에 있는가? ③ 평안무사하다
秋夜 가을밤
露濕靑空星散天 이슬 내리는 푸른 하늘에 별들이 흩어지고,
一聲叫雁塞雲邊 울음 우는 기러기 변경 구름 끝에 있네.
梅梢淡月移欄檻 매화가지에 걸린 맑은 달이 난간으로 오는데,
彈罷瑤箏眠未眠 탄현이 끝나고 아름다운 쟁(箏)은 잠들었지만 난 아직 잠못드네.
* 欄檻(난함) : 난간(欄干)
* 瑤箏(요쟁) : 1. 玉飾的箏。亦用為箏的美稱。 ▷ 元·張可久《折桂令•酒邊分得卿字韻》曲:「客留情春更多情,
月下金觥,膝上瑤箏。
* 箏(쟁) : ① 우리나라 고대 현악기의 하나. 가야금이나 거문고처럼 지더(zither)류에 드는 '쟁'은 오현(五絃)·금
(琴)·피리(觱篥)·횡취(橫吹)·소(簫)·고(鼓)와 함께 고구려에서 연주됐고, 백제 음악에서도 고(鼓)·각(角)·공후(箜)
·우(竽)·지(篪)와 함께 '쟁'이 연주됐다. 중국 수나라의 구부기(九部伎) 및 당나라의 십부기(十部伎) 중 고려기
(高麗伎)에서 쟁의 일종인 탄쟁(彈箏)과 추쟁(搊箏)이 고구려음악에서 연주됐다고『수서』(隋書) 및 『북사』(北
史)에 나온다.
백제 음악에 고·각·공후·쟁·우·지·적이 있다고『수서』(隋書)「동이전」(東夷傳)과『북사(北史)』 「백제전」에 전하
고, 『통전』(通典) 권46 소재 악6의 「사방악」(四方樂)에 전한다.
② 고려 때 송나라에서 들어온 신악기(新樂器)의 하나. 1114년(예종 9) 안직숭(安稷崇)이 송나라 휘종(徽宗
1101~1125)이 보낸 신악을 가지고 귀국했을 때 철방향(鐵方響)·석방향(石方響)·비파(琵琶)·오현(五絃)·쌍현
(雙絃)·공후(箜)·피리(觱篥)·지(篪)·소(簫)·포생(匏笙).훈(壎)·대고(大鼓)·박판(拍板)·곡보(曲譜)와 함께 '쟁'이 4
면(面) 신악기 중에 포함됐다고 『고려사』 권70(「악지」)에 전한다.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나
오는 '쟁'은 중국의 송나라식 악기명이므로 가야금으로 해석됐다.
③ 『문헌통고』(文獻通考)에 "쟁은 진성(秦聲: 진나라의 소리)이다. 부현(傅玄)의「쟁부(箏賦)」 서(序)에 위는 높
아 하늘같고, 아래는 평평하여 땅 같다. 속은 비어 육합(六合)에 준하고 현주(絃柱)는 12월에 의(擬)하였으
니 12현주를 얹으면 사상(四象)이 있고 그것을 타면 5음이 나온다. 이야말로 쟁은 인지(仁智)의 악기다"라
고 했다.
彈琴 거문고를 타면서
誰憐綠綺訴丹衷 거문고의 참된 정성(精誠) 하소연을 그 누가 알아주랴.
萬恨千愁一曲中 만 가지 한과 천 가지 시름이 이 한 곡조에 있네.
重奏江南春欲暮 거듭되는 연주에 강남의 봄도 저물어 가는데,
不堪回首泣東風 머리 돌리니 속 태우는 봄바람을 견딜 수 없네.
* 丹衷(단충) : 단성(丹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뜨거운 정성.
* 不堪(불감) : 1.감당할 수 없다. 2.…할 수 없다.
閨中怨 규중에서 서럽다.
瓊苑梨花杜宇啼 예쁜 정원 배꽃에 두견새 우는데,
滿庭蟾影更凄凄 뜰에 가득한 달그림자 더욱 처량하네.
相思欲夢還無寐 꿈속에서 만나려도 도리어 잠이 오질 않아
起倚梅窓聽五鷄 일어나 매화 핀 창가에 기대니 새벽닭이 우네.
竹阮春深曙色遲 대숲엔 봄이 깊어 새벽빛이 더딘데,
小庭人寂落花飛 뜨락엔 인적 없이 꽃잎만 흩날리네.
瑤箏彈罷江南曲 좋은 쟁(箏)과 거문고로 강남곡을 마치고
萬斛愁懷一片詩 수많은 근심을 한 편의 시(詩)로 품었네.
* 瓊苑(경원) : 예쁘게 가꾸워진 정원
* 杜宇(두우) : 두견(杜鵑) 곧 소쩍새를 말함.
* 蟾影(섬영) : 달그림자
* 五鷄(오계) : 五詩에 우는 닭(새벽 닭).
愁思 시름에 겨워
雨後凉風玉簟秋 비온 뒤 찬바람이 대자리에 드는데,
一輪明月掛樓頭 둥근 밝은 달이 마루 꼭대기에 걸렸네.
洞房終夜寒蛩響 방안은 밤새도록 차갑고 귀뚜라미 우니
擣盡中腸萬斛愁 마음속 만 가지 근심을 다 찧네.
平生耻學食東家 평생 배움이 부끄러워 집에서 머무는데,
獨愛寒梅映月斜 홀로 사랑하는 겨울 매화에 달이 비스듬히 비추네.
時人不識幽閑意 세상 사람들은 조용히 살려는 뜻을 알지 못하고
指點行人枉自多 길가며 공연히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많네.
* 愁思(수사) : 근심스런 생각
* 玉簟(옥점) : 차갑고 매끄러운 옥 같은 대자리
* 洞房(동방) : ①잠자는 방(房). 침방(寢房) ②화촉동방(華燭洞房)ㆍ동방화촉(洞房華燭) ③깊숙한 방(房)
* 終夜(종야) : 하룻밤 사이를 걸침, 또는 하룻밤 사이
* 東家(동가) : 1. 동쪽에 있는 이웃집. 2. 머물러 있는 집의 주인.
* 幽閑(유한) : 유한(幽閒). (여자(女子)의 인품(人品)이)그윽하고 한가(閑暇)함
* 指點(지점) : ① 지시하다 ② 옆에서 결점을 찾다 ③ 논하다 ④ 가리켜 알려 주다
* 枉自(왕자) : 헛되이. 보람 없이. 공연히. 괜히.
早秋 이른 가을
千山萬樹葉初飛 산마다 나무마다 잎사귀 날리는데,
雁叫南天帶落暉 기러기 울며 가는 남쪽 하늘가는 해가 지네.
長笛一聲何處是 대금(大笒) 한 곡조 어디서 들려오나?
楚鄕歸客淚添衣 고향에 되돌아가는 나그네 눈물이 옷을 적시네.
* 落暉(낙휘) : 다 져가는 저녁 햇발. 지는 해. 석양
* 長笛(장적) : 긴 횡적(橫笛). 고려시대 대금의 별칭.
* 楚鄕(초향) : 먼 고향
春怨 봄을 원망하다.
竹院春深鳥語多 대밭에 봄이 깊어 새 소리 많은데,
殘粧含淚捲窓紗 남은 화장에 눈물 머금은 채 사창을 말아올렸네.
瑤琴彈罷相思曲 아름다운 거문고로 상사곡을 끝내니,
花落東風燕子斜 꽃 떨어지는 동풍에 제비가 비껴가네.
* 殘粧(잔장) : 지우지 않은 화장
* 窓紗(창사) : 창문에 드리운 얇은 천으로 만든 휘장, 발
* 相思曲(상사곡) : 남녀(男女) 사이의 애정(愛情)을 주제(主題)로 한 노래. 현행 12가사의 한 곡명.
"상사별곡"의 노래 가사는 『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에 전하고, 거문고악보는
『삼죽금보(三竹琴譜)』에 전한다. 19세기 후반 진주교방(晉州敎坊)에서 연주된 "상사별곡"의
가사는 1867년(고종 4)부터 1870년(동왕 7) 사이 정현석(鄭顯奭)이 진주목사(晉州牧使)로
지냈을 때 진주교방에서 연행됐다고 그의 『교방가요』(敎坊歌謠 1872)에 전한다.
정든 임을 이별하고 그리는 정과 안타깝게 애태우는 심정을 읊은 이 노래의 원래 곡명은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상사곡"으로 나오고, "상사별곡"(상별곡)이라는 곡명은
『교주가곡집(校註歌曲集)』에 나온다. 현행 "상사별곡"은 하규일의 제자 이주환(李珠煥)이
전승한 것이다. 10박(5박+5박)을 한 장단의 주로 삼은 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이 노래는
48장단의 11마루로 구성됐다. 속청을 많이 쓰고 음역이 다른 가사보다 넓다는 점이 특이하다.
『삼죽금보』 소재의 가사 "상사별곡"은 다음과 같다.
"인간이별(人間離別) 만중(萬事中)의/독슉공방(獨宿空房)이 더욱 섧다/상불견(相思不見) 이내
진정(眞情)을/제 뉘라서 알니 미틴 설움이 렁더렁이라/흣드러진 근심 다후루혀 더뎌두고/
자나나 나자나 님을 못보니/가이 답답 어란 양(樣姿)/고은 소리 눈의 암암(黯黯)하고/
귀에 (錚錚) 보고지고 님의 얼굴/ ··· 운운."
↑전래되고 있는 거문고용 상사곡 악보.
秋思 가을에 생각한다.
昨夜淸霜雁叫秋 어젯밤 맑은 서리에 기러기 우는 가을에,
擣衣征婦急登樓 옷 다듬질하던 군인의 아낙 급히 누각에 올랐네.
天涯尺素無緣見 먼 곳의 소식은 인연이 없어 보여
獨倚危欄暗結愁 홀로 위태로운 난간에 기대니 가만히 근심이 맺히네.
* 征婦(정부) : 遠征(원정) 나간 병사의 아내. 군대에 간 군인의 아내.
* 擣衣(도의) : 다듬이질해서 옷을 다듬다.
* 尺素(척소) : 단신. 짧은 편지[서신].
* 無緣(무연) : 1. 아무 인연이나 연고가 없음. 2. 전생에서 부처나 보살과 인연을 맺은 일이 없음.
自恨薄命 기구한 운명을 한탄함.
擧世好竽我操瑟 온 세상이 피리를 좋아한다지만 나는 거문고를 잡았는데,
此日方知行路難 이날 가는 길이 어렵다는 걸 함께 알았지.
刖足三慙猶未遇 무슨 죄를 지었기에 아직도 만나질 못하고 있으니
還將璞玉泣荊山 어째서 다듬지 않은 옥돌이 형산(荊山)에서 울고 있는가?
* 薄命(박명) : 복이 없고 사나운 팔자
* 擧世(거세) : ①온 세상(世上) ②모든 사람
* 方(방) : 모두, 함께
* 刖足(월족) : 죄인의 발꿈치를 베던 형벌
* 刖足三慙(월족삼참) : 발 잘리고 세 번이나 수치를 당함. 무슨 죄를 지었기에.
* 還將(환장) : 오히려[다시금] ~하다.
* 璞玉(박옥) : 다듬지 않은 옥 덩어리.
* 荊山(형산) : 중국(中國) 호북성(湖北省)에 옥석(玉石)이 나온다는 산의 이름
記懷 마음을 적는다.
梅窓風雪共蕭簫 매화 보는 창가에 눈바람이 함께 쓸쓸한데,
暗恨幽愁倍此宵 남모르는 한과 아득한 근심이 이 밤에 더하네.
他世緱山明月下 내세에는 구산(緱山)의 밝은 달 아래서
鳳簫相訪彩雲衢 봉황에 퉁소 불며 서로 찾아 고운 구름에 가리라.
* 他世(타세) : 미래(未來)의 세계(世界)
* 緱山(구산) : 중국 낙양시 동쪽에 있는 산. 주나라 태자 진(晉)이 이 산에서 놀다가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되었다고 전함. 진은 생활을 잘 불었다고 함.
夜坐 밤중에 앉아서
西窓竹月影婆娑 서쪽 창가 대나무는 달그림자에 한들거리는데,
風動桃園舞落花 바람이 복숭아 동산을 움직이니 춤추며 꽃이 떨어지네.
猶倚小欄無夢寐 오로지 작은 난간에 기대앉아서 꿈꾸며 잠들지 못하는데,
遙聞江渚採菱歌 멀리 강가에서 마름 따는 노래가 들려오네.
風飜羅幕月窺窓 바람은 장막에 펄럭이고 달빛은 창을 엿보는데,
抱得秦箏伴一釭 가야금을 얻어 껴안고 등불 하나와 짝하네.
愁倚玉欄花影裡 아름다운 난간에 기대니 근심이 꽃 그림자 속에 있는데,
暗聞蓮唱響西江 가만히 들리는 연밥 따는 노래가 서쪽 강에 울리네.
* 西窓(서창) : 서쪽의 창. 부인의 침실.
* 婆娑(파사) : 한들한들하다. 하늘하늘하다. 한들거리다.
* 羅幕(나막) : 부유한 집에서 사용하던 천으로 된 휘장. 비단 장막
* 秦箏(진쟁) : 금(琴)과 유사한 악기로 중국 진나라 시대에 기원하여 ‘진쟁’이라 한다. 여기서는
가야금으로 여겨진다.
↑중국 전통악기 진쟁(秦箏), 고쟁(古箏)
贈畵人 화공에게 드림
手法自然神入妙 수법이 있는 그대로라 신의 경지에 들었으니,
飛禽走獸落毫端 나는 새와 뛰는 짐승이 붓끝에서 나오네.
煩君爲我靑鸞畵 바쁜 그대가 날 위해 푸른 난새를 그려주니,
長對明銅伴影懽 늘 밝은 거울 대하듯 짝하며 그림을 좋아하리.
* 毫端(호단) : 붓끝.
* 影(영) : 초상(肖像), 화상(畫像)
閑居 한가로이 지내면서
石田茅屋掩柴扉 돌밭 초옥에서 사립문으로 가리니
花落花開辨四時 꽃이 지고 피어 사계절을 분간하네.
峽裡無人晴晝永 골짜기엔 사람 없이 개인 낮이 길어
雲山烟水遠帆歸 구름 낀 산 안개 낀 바다에 멀리 돛배가 돌아오네.
登龍安臺 용안대에 올라
云是長安一代豪 이야말로 장안의 한 세상 호걸이라
雲旗到處靜波濤 구름 깃발 닿은 곳에 파도가 고요하네.
今朝陪話神仙事 오늘 아침 모시고 신선의 일을 말하니
燕子東風西日高 제비가 동풍따라 저녁 해에 높이 떴네.
登千層菴 천층암에 올라서
千層隱佇千年寺 천층산에 숨어 있는 천년의 사찰에
瑞氣祥雲石逕生 상서로운 기운과 상서로운 구름이 돌길에 나오네.
淸磬響沈星月白 맑은 풍경소리 울려 잠기니 별과 달이 밝은데,
萬山楓葉鬧秋聲 온 산의 단풍잎이 가을 소리를 지껄이네.
* 千層菴(천층암) : 전북 변산에 있는 절.
憶昔 옛일을 그리며
謫下當時壬癸辰 속세에 귀향 올 당시인 임진년과 계사년에
此生愁恨與誰伸 이승의 시름과 한을 누구에게 말했던가?
瑤琴獨彈孤鸞曲 아름다운 거문고로 고난곡(孤鸞曲)을 타면서
悵望三淸憶玉人 시름없이 바라보며 삼청(三淸)으로 아름다운 그대를 그리네.
* 謫下(적하) : 귀양으로 내려가거나 내려옴, 또는 귀양으로 내려보냄. 신선이 속세에 내려오거나
사람으로 태어남.
* 此生(차생) : 이승. 현세. 한평생.
* 孤鸞曲(고난곡) : 부부간 이별의 노래
* 悵望(창망) : 시름없이 바라 봄.
* 三淸(삼청) : ①인간이 바랄 수 있는 도교의 최고 이상향. 삼청은 도교에서 삼원(三元)의 화생(化生)인
삼보군(三寶君)이 관할하는 영역으로 옥청(玉淸)·상청(上淸)·태청(太淸)을 지칭한다.
② 거문고 연주 때 '슬렝'으로 연주하는 것이 삼청이다. 삼청을 글레도들이라고 한다고, 『삼죽금보』(三竹琴譜)
에 나온다.
病中愁思 병중에 근심스런 생각
空閨養拙病餘身 독수공방 단점을 숨기니 병이 몸에 남아
長任飢寒四十春 늘 굶주림과 추위에 맡긴지 사십 년 세월이네.
借問人生能幾許 묻노니 인생은 얼마나 살 수 있을까?
胸懷無日不沾巾 가슴속 생각에 눈물 적시지 않는 날이 없네.
* 空閨(공규) : 오랫동안 남편(男便) 없이 여자(女子) 홀로만 쓸쓸히 있는 방(房)
* 養拙(양졸) : ① 자기의 단점을 숨기다 ② 결점을 감추다
* 借問(차문) : 남에게 물어 봄.
* 幾許(기허) : 얼마쯤. 얼마 가량
贈別 이별에 드림
堪嗟時事已如此 아!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半世功夫學畵油 반평생 공부는 그림만 배우네.
明日浩然歸去後 날이 밝으면 훌쩍 떠나 버리신 뒤에
不如何地又羈遊 어느 곳인들 나그네 머무는 곳만 못하리.
* 堪嗟(감차) :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 ‘아하’ 등의 감탄사로도 씀.
* 浩然(호연) : ①넓고 큰 꼴 ②물이 그침이 없이 흐르는 모양(模樣)
* 不如(불여) : 1.…만 못하다. 2.…하는 편이 낫다.
* 何地(하지) : 어디서
閨怨 규방에서 원망하다.
離懷消消掩中門 헤어진 마음이 서러워 중문을 닫았는데,
羅袖無香滴淚痕 비단옷 소매에 임의 향기 없고 눈물자국 만 있네.
獨處深閨人寂寂 홀로 지내는 깊은 규방은 적적하기만 한데,
一庭微雨鎖黃昏 온 마당에 안개비가 내려 황혼을 가두네.
相思都在不言裡 서로 그리워도 모두 말로 못하고
一夜心懷鬢半絲 하룻밤 생각에 머리가 반이나 세었네.
欲知是妾相思苦 이 첩의 그리워하는 괴로움 알고 싶거든
須試金環滅舊圍 옛날에 낀 금가락지가 빠지는지 시험해 보소.
* 羅袖(나수) : 얇은 비단옷의 소매.
* 微雨(미우) : 가랑비. 이슬비. 안개비.
* 都在(도재) : 모두
登月明庵 월명암(月明庵)에 올라
卜築蘭若倚半空 터를 가려 지은 절이 반공간에 의지하는데,
一聲淸磬徹蒼穹 한번 울리는 맑은 풍경소리가 푸른 하늘로 통하네.
客心怳若登兜率 나그네 마음도 황홀하게 어리어 도솔천에 올랐으니
讀罷黃庭禮赤松 황정경(黃庭經)을 읽고 나서 적송자(赤松子)를 뵈리라.
* 月明庵(월명암) : 전라북도 부안군 산내면 중계리 변산 쌍선봉(雙仙峰, 妙寂峰)에 있는 절.
조선 선조 때의 고승 진묵(震默)이 중창하여 17년 동안 머물면서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1863년(철종 14)성암(性庵)이 중건하였다. 1908년에 불탄 것을 1915년에 학명(鶴鳴)이
중건하였고, 1956년에는 원경(圓鏡)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산상무쟁처(山上無諍處)의 한 곳으로 대둔산 태고사(太古寺), 백암산 운문암(雲門庵)과 함께
호남지방의 3대 영지(靈地)로 손꼽히는 곳이며, 봉래선원(鳳萊禪院)이 있어서 근대의 고승인
행암(行庵)·용성(龍城)·고암(古庵)·해안(海眼)·소공(簫空) 등이 수도한 참선도량으로 유명하다.
↑변산 월명암(月明庵) 전경 - 사진 출처 : 인터넷
* 卜築(복축) : 터를 가려 집을 지음
* 蘭若(난야) : 아란야(阿蘭若)의 준말. 고요한 곳이[寂淨處]란 뜻으로 사원(寺院)을 이른 말. 절
* 半空(반공) : 하늘과 땅 사이 멀지 않은 허공. 그리 높지 않은 공중
* 怳若(황약) : 황홀하게 어리다.
* 兜率(도솔) : 도솔천(兜率天)을 말함.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인 잇수의 단위, 40리에 해
당)이 되는 곳에 있는 천계(天界). 여기에는 칠보(七寶)로 된 궁전이 있고 수많은 하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함.
* 黃庭經(황정경) : 도가(道家)의 경전. 신선이 되는 장생법(長生法)을 말했는데 7언시(七言詩)로 이루어졌음.
당서 예문지(唐書藝文志)에 ‘노자황정경일권(老子黃庭經一卷)’이라 있음.
* 赤松子(적송자) : 적송자는 신농씨(神農氏) 시대에 활약했던 우신(雨神 : 비의 신)이다.
그는 빙옥산(冰玉散 : 수정 분말)을 복용하는 술법에 뛰어났는데, 이것을 마시면 불 속에 있어도 화상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이 술법은 후에 신농씨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적송자는 항상 곤륜산에 있는 서왕모의 거처에 드나들었다. 그리고 비바람을 타고 천상과 지상을 오르내리며 신농씨의 딸에게 선술(仙術)을 가르쳐주었다. 마침내 그의 딸이 모든 것을 배워 신선이 되자 함께 천상계로 올라갔다. 세월이 흘러 황제(黃帝)의 증손자인 고신씨(高辛氏) 시대가 열리자 적송자는 다시 지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尹公碑 윤공비
一曲瑤琴怨鷓鴣 좋은 거문고 한 곡조에 자고새를 원망하는데,
荒碑無語月輪孤 거친 비석은 말이 없고 둥근 달만 외롭구나.
峴山當日征南石 현산(峴山)의 그날 남쪽을 정벌한 비석에도
亦有佳人墮淚無 아름다운 사람은 있었지만 눈물 흘리진 않았다네.
* 鷓鴣(자고) : 자고새. 꿩과에 속하며 모양은 메추라기와 비슷하나 조금 큰 편.
[자고새의 모습]
* 峴山(현산) : 호북성 양양현(湖北省襄陽縣) 남쪽에 있는 산. 위(魏)의 시인 왕찬(王粲)의 집이 이 산 밑에 있어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다고 함.
* 羊祜(양호) : 진(晋)의 태수. 5세 때 유모더러 ‘내가 가지고 놀던 금가락지를 달라.’ 하매 유모가 원래 그런 물
건을 가진 일이 없었다 하니, 양호는 이웃 이씨(李氏)의 동산 뽕나무 속에서 금가락지를 찾아냈는데, 주인이
놀라 ‘이것은 내 죽은 아이가 잃어버렸던 것이다.’ 하여 유모가 자세히 이야기하니 양호는 곧 이씨 죽은 아이
의 후신이었다.
장수가 되어 오(吳)와 싸울 때 늘 전쟁의 기일을 알려 주며 싸웠고 불의의 습격을 취하지 않았다.
양양태수(襄陽太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며 산수를 좋아해 늘 현산(峴山)에 올라 술 마시며 시를 읊었는데, 한번
은 종사(從事) 추담(鄒湛) 등을 돌아보며 ‘이 우주가 생기자 이 산이 있었고 이 산이 있자 그대들과 나처럼 이 산에 올라 논 사람이 많았을 것이지만, 지금 모두 간 곳이 없으니 슬픈 마음이 생긴다.
죽은 뒤 혼백이 있다면 응당 이 산에 오르리라.’ 하니 추담이 ‘공은 덕이 높고 공이 크니 어진 명성이 반드시 이 산과 함께 하겠지만, 저와 같은 자는 참으로 공의 말씀과 같을 것입니다.’ 했다. 양호가 죽자 고을 사람들이 현산에 비석을 세우고 사당을 지어 명절에 제사 드리며 그 비를 바라보는 사람 모두 눈물을 흘렸으므로, 서진(西晋)의 두예(杜預)가 이 현산비(峴山碑)를 타루비(墮淚碑)라 이름지었다 한다. <진서(晉書) 양호전(羊祜傳)>
* 當日(당일) : 일이 생겼던 바로 그 날. 일이 있던 그 날
* 墮淚(타루) : 눈물을 흘림
※ 윤공비시는 『매창집』에는 실려 있으나 허균의 친구인 이원향이 허균을 그리워하는 매창을 지나가다 보고 위
로하기 위해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
憶故人 옛 임을 생각하며
春來人在遠 봄이 왔다지만 그 분은 멀리 계시니
對景意難平 경치를 보아도 마음 가누기 어렵네.
鸞鏡朝粧歇 거울보고 아침에 화장하다 멈추고,
瑤琴月下鳴 아름다운 거문고로 달빛 아래에서 우네.
看花新恨起 꽃을 보면 새로운 한이 일고
聽燕舊愁生 제비 소리에 옛 시름이 생기니
夜夜相思夢 밤마다 님 만나는 꿈을 꾸다가
還驚五漏聲 오경을 알리는 소리에 또 놀라네.
* 鸞鏡(난경) : 난새(鸞鳥)를 뒷면에 새긴 거울로 일반적으로 여자가 사용하는 거울을 통틀어 이르는 말.
* 五漏(오루) : 오경(五更)을 알리는 자격루[물시계] 소리
* 五更(오경) : 새벽 네 시 전후
仙遊 신선으로 노닐며
千載名兜率 천 년간 이름난 도솔천인데,
登臨上界通 올라보니 천상(天上)과 통하네.
晴光生落日 맑은 빛이 저녁 해에 나오니
秀嶽散芙蓉 빼어난 큰 산이 연꽃처럼 흩어지네.
龍隱宜深澤 용이 숨은 마땅히 깊은 못인데,
鶴巢便老松 학의 둥지가 늙은 소나무에서 편안하네.
笙歌窮峽夜 연주와 노래로 산골짝 밤을 지새워
不覺響晨鍾 울리는 새벽 종소리도 몰랐네.
三山仙境裡 삼신산 신선들이 사는 곳은
蘭若翠微中 절이 푸른 숲 안인데,
鶴唳雲深樹 학이 우는 구름 깊은 나무에
猿啼雪壓峰 원숭이 울고 눈이 봉우리를 덮었네.
霞光迷曉月 노을 빛 흐릿한 새벽달 인데,
瑞氣映盤空 상서로운 기운이 허공에 서려 있네.
世外靑牛客 세상 밖의 노자(老子)가
何妨禮赤松 적송자(赤松子)를 뵌들 무슨 상관이랴.
樽酒相逢處 술통이 서로 만나는 곳에
東風物色華 동풍에 만물의 빛이 빛나는데,
綠垂池畔柳 못가 버들은 푸르게 드리우고
紅綻檻前花 난간 앞 꽃은 붉게 피어나네.
孤鶴歸長浦 외로운 학이 긴 갯가로 돌아오고
殘霞落晩沙 잔 노을이 저물녘 모래밭에 내리는데,
臨盃還脈脈 술잔이 또다시 끝없이 이어지다가
明日各天涯 다음 날이면 각자 멀리 떨어지네.
* 登臨(등임) : ①등산(登山) 임수(臨水) ②높은 곳에 오름
* 上界(상계) : 천상계. 천상. 천계.
* 晴光(청광) : 맑은 날의 햇빛
* 笙歌(생가) : 1.생황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다. 2.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다. 3. 연주와 가창 소리.
* 翠微(취미) : ①산의 중턱 ②먼 산에 아른아른 보이는 엄은 푸른 빚
* 盤空(반공) : 허공에 서림.
* 靑牛客(청우객) : 푸른 소를 타고 가는 노자가 함곡관을 지나 서역으로 가는 도중 도덕경을 지었다는데서 나
온 고사이다.
* 何妨(하방) :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해도) 무방하다[괜찮다].
* 池畔(지반) : 못가. 연못의 변두리
* 脈脈(맥맥) : 끊이지 않는 모양(模樣)
* 天涯(천애) : ①하늘 끝. 먼 변방(邊方) ②아득히 떨어진 타향(他鄕)
遊扶餘白馬江 부여 백마강에서 노닐며
水村來訪小柴門 강마을로 찾아오니 작은 사립문인데,
荷落寒塘菊老盆 차가운 못에 연꽃 지고 국화도 화분에서 오래 되었네.
鴉帶夕陽啼古木 석양에 띠를 두른 까마귀 고목에서 울고
雁含秋氣渡江雲 가을 기운을 머금은 기러기 강과 구름을 건너네.
休言洛下時多變 말하지 않아도 서울은 수시로 변화가 많은데,
我願人間事不聞 나는 세상 일 듣고 싶지 않네.
莫向樽前辭一醉 술 앞의 말씀에 취했다 비웃지 마소.
信陵豪貴草中墳 부귀를 누리던 신릉군도 풀 속 무덤이라네.
* 休言(휴언) : 말을 하지 않음
* 洛下(낙하) : 낙중(洛中). 낙양(洛陽)의 안이라는 뜻으로, 서울 안을 이르는 말.
* 莫向(막향) : ~을 비웃지 마라.
* 신릉(信陵) : 신릉군(信陵君)에 봉해졌던 공자 무기(無己)를 말함. 그는 어질고 선비를 예우하여 사방 천리에
서 선비가 모여 식객이 삼천이나 되었으며, 한(漢)나라를 창업한 고조(高祖)도 뒷날 그의 거처를 지날 때 그곳
백성들이 그의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고 함. 이러한 신릉군은 사군자(四君子)에 지칭되기도 한다.
* 豪貴(호귀) : ① 부유하고 권세가 크다
② 부유하고 권세가 있는 사람
↑백마강
籠鶴 새장 속의 학
一鎖樊籠歸路隔 새장에 한번 갇혀 돌아갈 길 막혔으니,
崑崙何處閬風高 곤륜산 높은 낭풍(閬風)은 어느 곳인가?
靑田日暮蒼空斷 푸른 논에 해지니 푸른 하늘 끊겼는데,
緱嶺月明魂夢勞 구령(緱嶺)의 밝은 달은 꿈결에도 고달프네.
瘦影無儔愁獨立 파리한 그림자 짝 없이 수심으로 홀로 섰는데,
昏鴉自得滿林噪 황혼의 까마귀는 스스로 만족하며 숲 가득 지저귀네.
長毛病翼摧零盡 긴 털에 병든 날개가 꺾여 다 떨어져도
哀淚年年憶九皐 슬피 울며 해마다 깊숙한 물가를 기억하네.
* 樊籠(번롱) : 새장. 번뇌에 묶여 자유롭지 못함.
* 閬風(낭풍) : 곤륜산(崑崙山)의 꼭대기에 있다는 신선이 산다는 곳.
* 靑田(청전) : ① 푸릇푸릇한 벼논. 아직 익지 않은 벼논 ② 산 이름. 밭에서 청지(靑芝)가 나고 학(鶴)의 서식처
라 함.
* 緱嶺(구령) : 구씨산(緱氏山)을 가리키는데 주(周)나라 영왕(靈王)의 태자 왕자교(王子喬)는 생황을 불어 봉황
의 울음소리를 잘 냈는데, 신선 부구공(浮丘公)을 만나 숭산(嵩山)으로 들어가 도술을 배운 지
30여 년 후 백학을 타고 구씨산 마루에 올라가 며칠간 있다가 떠나 버렸다고 한다.
* 魂夢(혼몽) : 꿈자리
* 瘦影(수영) : 비쩍 마른 그림자, 파리한 그림자. 대개 매화 그림자를 뜻한다. 疎影이라는 표현도 많이 쓴다
* 昏鴉(혼아) : 황혼의 까마귀
* 九皐(구고) : 깊숙한 물가. 『시경(詩經)』에서 나오는 말로 학이 우는 깊은 못을 말함.
寫懷 생각을 적다
結約桃源洞裡仙 도원(桃源)에서 맺은 언약 골에서 신선이 되었는데,
豈知今日事凄然 오늘날 이리도 슬플 줄 어찌 알았으랴.
幽懷暗恨五絃曲 숨긴 마음 남모르는 한이 오현(五絃)의 가락이니
萬意千思賦一篇 천 가지 만 가지 뜻과 생각을 한 곡조에 싣네.
塵世是非多若海 세상에 시비는 바다같이 많은데,
深閨永夜苦如年 깊은 규방의 긴 밤도 기어코 해가 가네.
藍橋欲暮重回首 절 다리에 해가 저물어 다시 돌아보니
靑疊雲山隔眼前 푸른 산이 구름과 겹쳐 눈앞에서 멀어지네.
* 凄然(처연) : 슬프다.
* 苦(고) : 기어코
* 如年(여년) : 해가 가다, 일년이 지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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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友人(증 우인)
벗에게 드림
曾聞東海降詩仙(증문동해강시선)
일찍이 듣기로 동해에 시선(詩仙)이 내렸다던데
今見瓊詞意悵然(금견경사의창연)
이제 보니 구슬같은 말씀의 뜻에 한탄하네.
緱嶺遊蹤思幾許(구령유종사기허)
구령에서 노닐던 흔적 얼마쯤일까 생각하니
三淸心事是長篇(삼청심사시장편)
신선이 생각하는 일은 이 긴 문장이네.
壺中歲月無盈缺(호중세월무영결)
술병 속 세월은 차고 이지러짐이 없지만,
塵世靑春負少年(진세청춘부소년)
속세의 청춘은 어린 나이가 짐을 지네.
他日若爲歸紫府(타일약위귀자부)
뒷날에 만약 선계(仙界)로 돌아가려거든
請君謀我玉皇前(청군모아옥황전)
그대의 꾀로 나를 옥황상제 앞에 데려다 주오
◇瓊詞(경사) : 경문(瓊文). 아름다운 글
◇悵然(창연) : 한탄하다.
◇長篇(장편) : ①제한(制限)이 없는 고시체의 한 가지 ②편장이 긴 시가(詩歌), 문장(文章), 소설(小說) 등
(等). 세계(世界)가 광범(廣範)하고 구상도 복잡(複雜)하며 양도 많음.
◇他日(타일) : 1.지난날. 2.타일. 훗날. 뒷날.
◇紫府(자부) : 선부(仙府). 선계(仙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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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次韓巡相壽宴時韻(복차한순상수연시운)
한순상의 장수 축하연에 삼가 차운하다.
地接神山近(지접신산근)
땅은 신선이 사는 산과 가까이 닿았고,
溪流弱水通(계류약수통)
계곡은 흘러 약수로 통하네.
遊蜂飛暖日(유봉비난일)
벌이 노닐며 나는 따뜻한 날
新燕語淸風(신연어청풍)
제비가 새로 왔다고 청풍이 알려주네.
妙舞搖花影(묘무요화영)
오묘한 춤에 꽃 그림자 흔들리고
嬌歌響碧空(교가향벽공)
고운 노래가 푸른 하늘에 울리는데,
蟠桃王母壽(반도왕모수)
선도로 서왕모께 헌수(獻壽)하니
都在獻盃中(도재헌배중)
모두 올리는 술잔 속에 있네.
靑鳥飛來盡(청조비래진)
파랑새도 다 날아오지 못하였는데,
江南雁影寒(강남안영한)
강남의 기러기는 그림자가 차갑네.
愁仍芳草綠(수잉방초록)
방초(芳草)가 푸르기에 근심에 겨운데,
恨結落紅殘(한결락홍잔)
한 맺혀 떨어지는 붉은 게 잔인하네.
歸思邊雲去(귀사변운거)
돌아가고픈 생각에 구름 곁에 가고
旅情夢裡歡(여정몽리환)
떠도는 마음은 꿈속에서나 기쁘네.
客窓人不問(객창인불문)
나그네 묵는 방은 사람이 묻지를 않는데,
無語倚危欄(무어의위란)
말없이 높은 난간에 기대네.
◇弱水(약수) : 신선(神仙)이 살았다는 중국(中國) 서쪽의 전설적(傳說的)인 강. 길이가 3,000리나 되며 부력이
매우 약하여 기러기의 털도 가라앉는다고 함.
◇遊蜂(유봉) :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벌.
◇蟠桃(반도) : 천 년 만에 한 번씩 열매가 열린다는 선도(仙桃)
◇旅情(여정) : 객지(客地)에서 품게 되는 울적(鬱寂)한 느낌
◇客窓(객창) : 나그네가 거처(居處)하는 방(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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