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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새는 '공중 급유' 받으며 9일에 8000km 난다

글모음(writings)/토막이야기

by 굴재사람 2021. 5. 20.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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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1년 10달 비행하면서 곤충 사냥..순풍 타고 하루 한반도 거리 주파

땅에 앉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 ‘다리 없는 새’로 알려진 칼새는 바람과 날벌레의 힘으로 장거리 여행을 빠르게 해치운다. 다비드 다미코 제공.

 

칼새는 날기 위해 태어난 새이다. 둥지를 틀 때를 빼고 1년 중 10달 가까이 하늘에서 먹고 자고 짝짓기하며 장거리 이동한다. 생물 분류학의 시조인 칼 린네가 1758년 이 새의 학명으로 붙인 아푸스(apus)는 ‘다리가 없다’는 뜻이다.

 

칼새가 오래 날 뿐 아니라 이동속도 또한 기록적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순간속도는 시속 300㎞를 내는 매를 따를 수 없지만 무게 40g의 작은 새가 대양과 사막을 건너 8000㎞를 보름 만에 주파했다. 순풍을 타고 최고 속도를 낸 9일 동안에는 하루에 832㎞씩 비행했다.

 

초소형 위치추적장치를 단 유럽칼새. 아론 헤이스트롬 제공.

 

수잔 오케손 등 스웨덴 룬드대 연구자들은 유럽 최북단인 스웨덴 라플란드 번식지와 중앙·서아프리카 월동지를 오가는 유럽칼새 19마리에 빛을 이용한 소형 위치추적장치(GLS)를 달아 이들의 이동 경로와 속도를 추적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과학저널 ‘아이사이언스’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거리로만 친다면 번식지인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까지 태평양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큰뒷부리도요가 윗길이다(▶태평양 1만2천 킬로 논스톱 비행 기록 도요새). 그러나 큰뒷부리도요는 칼새보다 10배는 무겁고 이동 직전 지방을 축적해 체중을 2배로 불려 필요한 에너지와 물을 충당한다.

 

이에 견줘 칼새는 에너지를 조금도 비축하지 않고 출발해 공중에서 먹이를 사냥해 필요한 열량과 수분을 얻는 전략을 쓴다. 오케손은 “이런 전략으로 칼새는 연료를 비축할 필요가 없어 이동에 드는 에너지를 현저하게 줄일 수 있으며 그 결과 이동속도도 빨라진다”고 말했다. 보통 작은 새는 하루 200∼400㎞를 이동하는데 견줘 공중에서 사냥하는 칼새와 제비는 하루 500㎞를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칼새는 공중에서 나방, 잠자리, 파리, 벌 등 날아다니는 곤충떼를 만나면 무리 지어 사냥한다. 그러나 비행 곤충떼와 만나는 것은 불확실성이 커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중요해진다.

 

칼새는 제비와 마찬가지로 비행하면서 날벌레를 사냥한다. 체내에 지방을 비축할 필요가 없어 이동시간이 단축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칼새가 날벌레들을 정시에 만나는 것 못지않게 뒤에서 불어오는 순풍을 타는 것도 이동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밝혔다. 봄철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동할 때 칼새는 순풍이 부는 시기를 기다려 이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칼새는 5월 중순부터 보름에 걸쳐 사하라사막과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이동했는데 이때 평균 초속 8.6m, 최대 초속 36m의 순풍을 타고 최고 고도 5500m에서 빠르게 비행했다. 연구자들은 “가을철 아프리카 월동지를 갈 때보다 바람 덕분으로 속도를 20% 높일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새들은 순풍이 부는지 어떻게 알까. 오케손은 “칼새들이 그때그때 풍향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며칠 뒤 바람이 어떻게 불지 예상하고 비행경로를 잡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그런 예측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기압을 감지해 일기예보에서 기상도를 보듯이 바람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칼새의 이동 경로. 왼쪽이 월동을 위한 남행이고 오른쪽이 번식을 위한 북행길이다. 오케손 외 (2021) ‘아이사이언스’ 제공.

 

실제로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봄철 칼새는 13일 동안 하루 평균 570㎞의 속도로 북상했지만 늦여름 월동 이동 때는 38일 동안 하루 평균 250㎞를 비행했다. 바람을 타지 못하는 남행길에서 칼새는 먹이와 적당한 바람을 찾아 여러 곳에서 머물며 이동 경로도 구불구불했다. 북행길에서도 3마리는 논스톱으로 비행했지만 나머지는 평균 5일씩 1∼3번 머물렀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중간에 경유하는 시간을 빼고 월동지와 번식지 사이를 순수하게 이동할 때의 속도는 북행길에서 하루 816㎞, 남행길에서 506㎞로 나타났다. 바람을 타고 빠르게 북상하는 칼새는 빠르면 하루 만에 마라도에서 백두산까지의 거리를 주파하는 셈이다.

 

연구자들은 “특히 북유럽에서 번식하는 칼새는 이제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빨리 장거리 이동 비행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이것을 가능하게 한 곤충과 순풍이 농약사용과 기후변화로 흐트러지면 칼새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밝혔다.

 

유럽칼새는 유럽뿐 아니라 시베리아와 중국에도 서식한다. 우리나라에는 다른 종의 칼새가 산다. 아론 헤이스트롬 제공.

 

유럽칼새는 유럽은 물론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중국 등에서 번식하며(▶베이징칼새, 1년 여정 드러나…날면서 먹고 자고 짝짓기) 아프리카에서 월동한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칼새는 유럽칼새와 가깝지만 다른 종으로 우리나라와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 번식하고 동남아에서 월동한다.

 

인용 논문: iScience, DOI: 10.1016/j.isci.2021.10247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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