智異山詩
- 崔致遠 -
東國花開洞(동국화개동) 동방 나라의 화개동은
壺中別有天(호중별유천) 항아리 속의 별천지라네
仙人推玉枕(선인퇴옥침) 신선이 옥침을 물리는 사이에
身世欻千年(신세훌천년) 이 몸은 천 년이 훌쩍 지나가지
春來花滿地(춘래화만지) 봄이 오니 꽃이 땅에 가득하고
秋去葉飛天(추거엽비천) 가을이 가니 하늘에 낙엽 흩날리네
至道離文字(지도리문자) 지극한 도는 문자를 여의고
元來是目前(원래시목전) 원래부터 이는 눈앞에 있었다네
擬說林泉興(의설림천흥) 자연에 흥취 있다고 말들 하지만
何人識此機(하인식차기) 어느 누가 이 기미를 알겠는가
無心見月色(무심견월색) 무심히 달빛을 쳐다보며
黙黙坐忘歸(묵묵좌망귀) 묵묵히 앉아서 돌아가는것도 잊어버리네
密旨何勞舌(밀지하노설) 천지의 비밀을 말해 어찌 혀를 수고롭게 하겠는가
江澄月影通(강징월영통) 강이 맑으니 달 그림자 비치네
長風生萬壑(장풍생만학) 긴 바람 골짜기로 불어오니
赤葉秋山空(적엽추산공) 단풍 든 가을 산은 모두 비었네
* 최치원은 아름다운 불교시를 여러 편 남겼지만,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지리산시(智異山詩)'이다.
이 시는 한국문학사에 처음 나타난 본격적인 선시(禪詩)인데 흥미로운 전승과정을 간직하고 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따르면, “한 노승이 지리산의 석굴에서 여러 권의 책을 발견했다.
그 중 한 책이 최치원의 시첩이었다. 구례(求禮) 군수 민대륜(閔大倫)이 나에게 이 책을 보내주어 살펴보니,
정말 최치원의 글씨였고, 시 또한 기묘하고 예스러워 최치원의 작품임을 의심할 수 없었다.
모두 16수였으나 그 반은 잃어버렸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그는 말년에 지리산 쌍계사 등에 은거하였고, 쌍계사의 ‘진감선사비문’ 등에
그의 필적이 전해지기 때문에 이 시가 그의 작품이라는 데에는 이설이 없다.
학계에서는 이런 전승과정의 신빙성과 내용분석을 통해 이 시를 그의 작품으로 인정하고
'지리산시' 혹은 ‘지리산둔세시(智異山遁世詩)’라 하였다. 이 시는 총 16수 중 8수만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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