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백악관 기자실] 옛 소련을 해체시킨 레이건 대통령이 연단 앞에 섰다. 어떤 현안을 설명하기 위한 자리. 한 기자가 80세에 가까운 노령의 대통령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소통의 달인 레이건도 짜증이 났는가 보다. 회견을 마치고 퇴장하면서 혼잣말로 ‘son of bitch’ 라고 했다. 그 말이 전파를 타고 미 전역에 생중계됐다. 발끈한 백악관 출입기자들이 가슴에 ‘SOB’ 가 박힌 티셔츠를 단체로 맞춰 입고 출근했다. 보고를 받은 대통령이 빙긋 웃으면서 기자실에 나타났다. 그리고 말했다. “기자 여러분, 저의 '예산 절감(Save Our Budget)' 계획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기자들이 대통령의 이 위트 넘친 코멘트에 박장대소했다. 자칫 떨어질뻔 했던 대통령 지지율도 반등했다. [장면 2: 영국 하원 본회의장] 수의사였던 보건부 장관이 정부가 제안한 의료법 개정안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때 의사 출신의 상대 당 하원의원이 “수의사였던 주제에 사람의 치료에 관해 뭘 안다고 떠드느냐”고 힐난했다. 장관이 응수했다. “존경하는 의원님,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제가 한번 살펴봐 드릴까요?” 모든 의원이 박수로 화답했다. [장면 3: 일본 중의원 본회의장] 전쟁통에 한쪽 눈을 잃은 의원이 자신의 법안을 설명하고 있었다. 상대 당 의원이 “애꾸 주제에”라고 인신공격을 했다. 그러자 그 의원이 점잖게 맞받아쳤다. “일목요연(一目瞭然)한 법입니다.” [장면 4: 미국 대통령 선거유세장]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던 존 매케인 후보 진영이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가 사상적으로 질이 좋지 않은 인사들과 어울린 적이 있었다고 맹폭했다. 오바마 후보가 기가 막히게 응수했다. “질이 좋지 않은 사람들과 한때 어울렸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그 시절이 바로 제가 연방 상원의원이었을 때입니다.” 위트의 사전적 의미는 ‘지적 예지’로 사물을 인식하고 타인에게 즐거움을 주는 능력이다. 기가 막힌 언어적 표현을 통해 즐거움과 충격을 주고, 단어와 개념 사이의 예견치 못한 연관성이나 차이에 주목한다. 해학과 익살을 뜻하는 ‘유머’보다는 우리말의 ‘기지(機智)’에 가깝다. 네 장면 모두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위트가 번득이고 있다. 애석한 것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모두 외국의 예라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협상이나 토론의 장을 짓누르는 무거운 분위기에서 위트 넘치는 한마디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경우를 자주 봤으면 하는 소망이다. 위트가 넘쳐나는 소통,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 이재후 <김앤장 대표변호사 jhlee@kimch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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