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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도 끄떡없이 산다

글모음(writings)/좋은 시

by 굴재사람 2016. 2. 16.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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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도 끄떡없이 산다



                           ―이병승(1966∼ ) 
 



어제는 하루 종일 
까닭 없이 죽고 싶었다 
까닭 없이 세상이 지겨웠고 
까닭 없이 오그라들었다 

긴 잠을 자고 깬 오늘은 
까닭 없이 살고 싶어졌다 
아무라도 안아주고 싶은 
부드럽게 차오르는 마음 

죽겠다고 제초제를 먹고  
제 손으로 구급차를 부른 형, 
지금은 싱싱한 야채 트럭 몰고  
전국을 떠돌고 
남편 미워 못 살겠다던 누이는  
영국까지 날아가 
애 크는 재미로 산다며  
가족사진을 보내오고 
늙으면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면서도 
고기반찬 없으면 삐지는 할머니 


살고자 하는 것들은 대체로 
까닭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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