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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글모음(writings)/꽃과 나무

by 굴재사람 2015. 9. 1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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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이야기]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다. 출근길 서울 성공회성당 화단 등 여기저기서 탐스럽게 핀 과꽃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과꽃은 국화과 식물로, 원줄기에서 가지가 갈라져 그 끝마다 한 송이씩 꽃이 핀다. 한여름에 꽃이 피기 시작해 초가을까지 볼 수 있다. 꽃 색도 보라색에서 분홍색, 빨간색, 흰색까지 다양하다.

과꽃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정감이 가는 꽃이다. 어릴 적 고향에서는 과꽃을 대개 맨드라미·봉선화·채송화·백일홍 등과 함께 화단이나 장독대 옆에 심었다. 과꽃을 보면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가 나오는 동요 '과꽃'이 떠오른다. 2004년 타계한 아동문학가 어효선이 쓴 동시에 곡을 붙인 노래다. 그래서인지 나태주 시인은 "과꽃 속에는 누나의 숨소리가 들어 있다"고 했고, 누구는 과꽃을 '누나의 따뜻한 손과 같은 꽃'이라고 했다.

동요 '과꽃' 외에도 과꽃이 나오는 문학작품은 많다. 박경리의 '토지'에서 최참판댁 입구에도 '대문간에 이르기까지 길 양편에는 보랏빛 흰빛, 그리고 분홍빛의 과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양현은 이 과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어 섬진강에 던지며 이 강에 빠져 죽은 엄마 기화(봉순이)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16권).

과꽃이라는 이름의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과부꽃'에서 나온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이 꽃이 과부를 지켜주었다는 꽃 이야기가 전해오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 백두산 근처에 추금이라는 과부가 살았는데, 그 집에는 남편이 생전에 정성스럽게 가꾼 과꽃이 가득했다. 그런데 중매쟁이 할멈이 끊임없이 재혼을 설득하자 아내의 마음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즈음 남편이 꿈속에 나타나자 과부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과꽃을 소중히 가꾸며 살았다는 이야기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과꽃은 원래 북한 함경남도에 있는 부전고원과 백두산, 만주 일대에서 자생하는 식물이다. 자생종 과꽃은 진한 보랏빛이고 홑꽃이라고 한다. 그래서 과꽃의 한자 이름은 벽남국(碧藍菊)이다. 중국 쪽 백두산 근처에서 자생하는 과꽃을 보았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야생화 사진작가 김정명씨는 "지난달에도 옌볜 부근에서 지천으로 피어난 토종 과꽃을 보았다"며 "개량종과 달리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것이 꽃 맛이 뭔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그는 "토종 과꽃 씨앗을 받아와 심어보았는데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식물이라 그런지 잘 자라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가 흔히 보는 과꽃은 토종 과꽃을 유럽·일본 등에서 원예종으로 개량한 것이다. 프랑스 신부가 1800년대 초 과꽃을 보고 반해 씨를 유럽으로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꽃을 개량한 것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 다시 고향인 한반도까지 찾아온 것이다. 이처럼 과꽃은 우리나라 원산이면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심고 있는 식물 중 하나다. 화단에 흔한 원예종 꽃 중 거의 유일하게 우리 토종인 꽃이기도 하다.

우리가 관심을 안 갖는 사이 외국에 나간 식물은 과꽃만이 아니다. 1947년 미군정청 소속 식물 채집가는 북한산 백운대에서 자라는 털개회나무 종자를 채취해 미국으로 가져갔다. 이를 개량해 당시 식물 자료 정리를 도왔던 한국인 타이피스트의 성(姓)을 따서 '미스김라일락'이라고 이름붙였다. 이것이 1970년대 우리나라에 다시 들어와 관상식물로 자라고 있다.

구상나무는 한라산·지리산·속리산·덕유산 등 해발 500m 이상 고지대에서 자라는 상록침엽수다. 잎 뒷면이 흰색에 가까워서 멀리서 보면 나무가 은백색으로 보여 아름답다. 학명(Abies koreana)에도 '코리아'가 들어 있고, 영문 이름이 'Korean fir(한국 전나무)'인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그런데 1900년대 초 이 나무 종자가 해외로 반출된 이후 서양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울릉도 특산인 섬초롱꽃도 외국에서 개량해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섬초롱꽃은 원래 연한 자주색 바탕에 짙은 반점이 있는데, 요즘 화분 등에 심은 것을 가끔 볼 수 있는 울긋불긋한 섬초롱꽃은 개량한 것들이다.

참나리·하늘말나리·털중나리 등 우리 자생 나리들도 서양으로 반출돼 백합을 다양하게 개량하는 데 쓰였다. 우리는 이런 백합 구근(球根)을 많은 돈을 지급하면서 수입하고 있다. 다른 비비추와 달리 꽃대 끝에서 꽃잎이 360도 빙 돌려나는 흑산도비비추도 1980년대 중반 배리 잉거라는 미국인이 흑산도에서 가져가 '잉거비비추'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이처럼 수많은 우리 꽃들이 고향을 떠나 머나먼 타지 화단과 정원에서 피고 지고 있다. 그나마 우리 꽃들이 외국에서 큰 사랑을 받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하는 것일까.

이 글을 쓰기 위해 과꽃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보라색·분홍색 혀꽃에 노란 중앙부를 가진 꽃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핀 것이 참 예쁘다. '꽃 맛'을 느끼게 해준다는 토종 과꽃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백두산 근처에서 피어나는 토종 과꽃을 빨리 만나보고 싶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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