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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나무

글모음(writings)/꽃과 나무

by 굴재사람 2015. 8. 17.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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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나무

 

 

 

버들가지는 예로부터 ‘이별과 재회’의 뜻을 담고 있다. 국악인 김영임이 절창한 ‘천안도 삼거리 능수나 버들’에도 그런 사연이 담겨 있다. 전방 국경 경비병으로 병역 떠나는 홀아버지 유봉서와 어린 딸 능소…. 아버지는 천안 삼거리에 이르러 딸과 작별한다. 그리고 버들가지 하나를 그 자리에 심는다. 버들이 무성해지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이다. 딸의 이름을 따서 능소버들이라 하다가 지금은 능수버들로 바뀌었다. 이처럼 버들가지가 이별과 상봉의 상징이 된 배경은 한자 문화에 있다. 버들 류(柳)자는 머무를 류(留)자와 음이 같다. 그래서 동양화 속의 버드나무는 머물러 달라는 뜻이다. 옛날 중국 장안에서는 손님을 배웅할 때 버들가지를 꺾어 주는 풍습이 있었다. 버들가지를 꺾는다는 절류(折柳)가 배웅하여 이별한다는 뜻을 갖게 된 유래다.

우리나라의 버드나무목 버드나뭇과에는 60여 종이 있다. 대표명 버드나무 외에도 능수버들과 수양버들처럼 가지가 아래로 축축 늘어지는 버들류가 있고, 미루나무·양버들·이태리포플러 같이 가지가 곧은 수종도 있다. 이들 이름에 얽힌 사연도 가지가지다. 실버들이라고도 하는 수양버들은 중국 수(隋)나라 제2대 황제의 성을 물려받았다. 본명이 양광(楊廣)인 양제(煬帝)는 대운하를 만들고 그 둑에다 버들을 심게 했는데, 후세 사람들은 수류(隋柳) 또는 양류(煬柳)라고 했다. 그러다 가지가 수직으로 늘어진 버들, 양제의 버들이라 해서 수양(垂楊)버들이라고 한 것이다. 또, 버드나무답지 않게 외래어로 등록된 이태리포플러는 양(洋)버들과 미루나무의 교배종임을 이름에다 새겼다. 그런가 하면 미루나무는 강제 개명을 당한 케이스다. 본명은 원산지가 미국임을 밝힌 미류(美柳)나무였다. 그런데 ‘교양 있는 서울 사람들’이 단모음으로 발음한다는 명분에 밀려 1988년 미루나무로 표준어 족보에 올랐다.

포플러로 더 쉽게 인식되는 미루나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때는 1908년. 양버들과 함께 각각 미국과 유럽에서 도입됐다. 해방과 건국의 두 광복절이 8월 15일 하루에 겹쳐 있는 우리나라에는 잊지 말아야 할 두 미루나무가 있다.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있는 ‘통곡의 미루나무’와 비무장지대(DMZ) ‘북한군이 도끼로 미군을 살해한’ 미루나무다. 8월의 미루나무는 재상봉 아니라 불망(不忘)의 상징이다.

 

- 황성규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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