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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따라 봄이 맛과 함께 올라온다

라이프(life)/레져

by 굴재사람 2014. 3. 3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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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따라 봄이 맛과 함께 올라온다

 

 

‘지리산 앉고/ 섬진강은 참 긴 소리다/ … / 이 미친 향기의 북채는 어디 숨어 춤 추나/ 매화 폭발 자욱한 그 아래를 봐라/ 뚝, 뚝, 뚝, 듣는 동백의 대가리들/ 선혈의 천둥/ 난타가 지나간다’(문인수ㆍ채와 북 사이, 동백 진다). 시인의 귀엔 남도에 봄 오는 소리, 꽃 피고 지는 소리가 북소리로 들린다. 고수(鼓手)처럼 무겁게 앉은 지리산은 섬진강이 판소리 하듯 길게 흐르며 한 구비 틀 때마다 난타로 매화를 터뜨리고 동백을 떨어뜨린다.

지리산 자락 섬진강 변에 줄 폭죽 터지듯 봄 꽃이 망울을 터뜨렸다. 섬진강 하구는 제주를 떠난 봄이 뭍으로 올라서는 대문이다. 섬진강 서쪽, 광양 백운산 동쪽 자락 매화마을을 백매(白梅) 청매(靑梅)가 백설처럼 뒤덮었다. 보름 가까이 매향(梅香)을 뿌리던 봄은 조금씩 북상하면서 한 달 내내 섬진강 가에 꽃 대궐을 차린다.

화엄사 벚꽃. /오태진 기자
화엄사 벚꽃. /오태진 기자
광양 다압면 매화 농가 중에 청매실농원은 맨 처음 상업 재배에 나선 첫 매실 농장이자 가장 크고 화려한 매화 천국이다. 광양 매화 보러 간다고 하면 대개는 청매실농원에 간다는 얘기다. 3월 하순에 떠들썩하게 열리는 매화축제 역시 이곳이 중심이다. 아흐레 축제 동안 70만명이 다녀가는 명소다.

마이크 소리 요란하고 인파에 쓸려 다니는 북새통이 싫다면 섬진강 건너편 하동 땅으로 눈길을 돌려볼만 하다. 지리산 남쪽 능선 구제봉 아래 먹점마을에 별천지 매화 세상이 숨어 있다. 섬진강 동안(東岸)을 따라가는 19번 국도변 흥룡리로 들어서서 와룡사 언덕을 넘어가면 거기 은밀하게 들어앉은 마을이다.
화개장터 벚꽃. /오태진 기자
화개장터 벚꽃. /오태진 기자
광양처럼 꾸미고 다듬고 줄 세워 키우는 매실 과수원이 아니라 조금은 엉성하고 성긴 매화들이 마을 풍광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청매실농원 매화가 짙은 유화라면 먹점마을 매화는 연한 파스텔화다.

섬진강 매화를 터뜨린 꽃의 정령은 구례로 올라와 며칠 새 지리산 서북능선 만복대 기슭을 노랗게 물들인다. 늙고 말라빠진 검정 등걸에 노란 산수유 꽃불을 밝힌다. 사람을 달뜨게 하는 샛노랑이 아니라 눈도 마음도 편안한 연노랑이다.

산수유 꽃에 묻힌 고샅길 천천히 걷자면 탈속(脫俗) 따로 없어


구례군 산동면 마을들은 모두 3만 그루에 이르는 산수유 농사를 짓는다. 그중에 맨 윗자락 상위마을이 산수유 꽃이 가장 늦게 가장 아름답게 피는 곳이다. 산수유 8500그루 중에 3 분의 1이 500년 넘은 고목들이다. 병아리 솜털처럼 몽글몽글 맺힌 꽃이 맑은 계곡 물을 닮아 더욱 영롱하다. 상위마을 역시 구례 산수유축제 내내 붐벼서 요즘엔 19번 국도 서쪽 현천마을을 찾는 이가 많다. 한적하고 소박한 마을, 산수유 꽃에 묻힌 고샅길을 천천히 걷자면 탈속(脫俗)이 따로 없다.
상위마을 산수유. /오태진 기자
상위마을 산수유. /오태진 기자
봄은 축복이자 환멸이다. 살아 있다는 기쁨과 살아가야 한다는 슬픔을 함께 뿌리며 온다. 봄은 병(病)이다. 발열(發熱)하듯 꽃 피고 어지럼증처럼 아지랑이 인다. 봄은 짓궂다. 그냥 앉아 있지 말라고 일탈(逸脫)을 충동질한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정호승ㆍ선암사). 싱숭생숭한 봄이다.
광양 매화. /오태진 기자
광양 매화. /오태진 기자

동아식당 가오리찜, 야들야들 살점과 오돌오돌 물렁뼈 몇 젓가락에 막걸리 주전자 금세 동나

전남 구례읍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중심 도로 봉동길에 동아식당이 있다. 70년 넘는 허름한 누옥에서 장사하다 길 건너 골목 안으로 옮겨 왔다. 세든 집이 팔렸기 때문이다.
동아식당 가오리찜. /오태진 기자
동아식당 가오리찜. /오태진 기자
원래 동아식당은 잿빛 슬레이트 지붕이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낮고 어둑한 실내에 밴 아련한 정취로 사람들을 끌었다. 거기에다 예순 중반 주모의 꾸밈없이 살가운 인심과 소박하고 푸짐한 음식이 전국에 이름났다. 대표 메뉴는 가오리찜. 하루 이틀 말린 솥뚜껑만한 가오리에 파 당근 고추를 고명으로 얹고 가장자리를 빙 둘러가며 곱게 썬 부추를 수북이 쌓았다.

야들야들한 살점, 오돌오돌한 물렁뼈 몇 젓가락에 막걸리 주전자가 금세 동난다.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도록 고아낸 돼지 족탕도 일품이다. 콜라겐이 걸쭉하게 섞인 우윳빛 국물에 넣어 먹는 라면도 별미다.

이 집에선 이것저것 음식을 주문하면 여주인이 나서 말린다. 일단 한 가지를 먹어보고 시키라고 한다. 딸려 나오는 곁 음식이 워낙 푸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접시 가득 담긴 달걀 프라이가 이 집 명물이다. 달걀 네댓 개를 한꺼번에 부치고 다진 부추와 고추를 올렸다. 시골 주막 후한 인심이 덩달아 얹혔다.
동아식당 밑반찬. /오태진 기자
동아식당 밑반찬. /오태진 기자
씻어서 볶은 김치, 매콤한 파김치, 콩자반, 멸치볶음, 콩나물무침까지 하나같이 소탈하고 친근한 집 반찬이다. 무말랭이에선 햇빛 좋은 마당에 펼쳐놓고 말리던 그 냄새가 난다. 요즘 음식점 무말랭이는 물엿 범벅이어서 젓가락이 안 가는데 고소하고 쫄깃한 게 제맛이다. 국은 멸치국물에 무를 큼직큼직 썰어 넣고 고춧가루에 소금 간을 해 끓였다. 반으로 갈라 내장 뺀 국물 멸치가 정겹다. 이 집 메뉴판엔 값이 없다. 주인이 부르는 게 값이다. 하지만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둘이서 푸짐하게 먹고 마셔도 2만~3만원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옛 동아식당. /오태진 기자
옛 동아식당. /오태진 기자
새 가게는 환하게 넓고 여전히 손님도 많지만 마음이 허전할 수밖에 없다. 옛 낡은 가게가 지녔던 독특한 주막 분위기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심 좋고 손맛 좋은 주모가 있는 한 예전처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구례축협 하나로마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길을 건너면 된다. (061)782-5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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