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고혈압-심장병 환자가 등산할 때 깔딱고개에서 꼴깍하는 이유

라이프(life)/당뇨와 고혈압

by 굴재사람 2014. 2. 10. 18:02

본문

 

 

 

심장박사 임도선의 심장 이야기⑦ 이 카테고리의 다른 기사보기

고혈압-심장병 환자가 등산할 때 깔딱고개에서 꼴깍하는 이유

 

 

열 세살 어린 나이에 '정 호랑' 왕으로 등극하여, 39세에 천하통일을 이룬 진시황. 생의 마지막에는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불로장생 불로초를 찾기에 집착했고, 삼천동자를 풀어 동해 건너 지리산에서도 불노초를 찾았다는 기록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2012 세계보건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여성이 84세, 남성이 77세로 나타났다.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기간을 나타내는 건강수명은 여성이 73세, 남성은 71세로 각각 11세, 6세의 차이를 보였는데, 우리네 삶도 점차 ‘여유’를 갖게 되면서 막연하게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삶의 질’이 중요해진 시대이다. 이에 여가생활을 즐기면서 건강까지 관리할 수 있는 ‘등산’은 진시황의 불로초 찾기보다도 더 의미있는 긍정적인 활력을 주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시너지를 ‘등산’을 통해 찾는 이가 많아지면서 그에 따른 안전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산 정상을 갓 앞에 두고 갑자기 신체 이상을 보여 등산객을 구조용 헬기로 수송하는 구급대원들의 모습을 언론매체를 통해 쉽게 볼 수 있다. 나 역시도 앞서가던 어느 등산객이 흉통 및 숨이 차다며 쓰러져 응급처치를 함께 한 적이 있다.

최근 수년간의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집계한 사망사고 중 30% 이상이 신체결함으로 인한 사고로 확인되고 있다. 추락사, 익사,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사망도 적지 않으나, 이같은 사고사에 이어 고혈압과 심장마비 같은 신체결함으로 인한 심장질환 사고는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개인의 건강상태에 맞지 않는 무리한 산행과 이에 따른 준비부족이 큰 원인이 된다.

봄기운이 완연한 것 같다가도 어느새 무더운 여름이 오고, ‘가을이 왔었던가…’ 사색에 잠기는 사이에 춥디 추운 겨울이 온다. 이처럼 계절이 빠르게 변화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 몸은 더욱 분주해진다. 우리 몸은 달라진 아침과 저녁의 기온에 반응하는 등 섬세하게 외부환경 변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데, 바로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가 스스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도록 제어하는 일을 하고 있다. 외부환경이 바삐 변화하는 환절기가 되면 자율신경계 기능에 이상이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혈관 수축이다.

추운 날씨와 함께 눈이 내린 광주 무등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눈꽃을 즐기고 있다./김영근 기자 kyg21@chosun.com
추운 날씨와 함께 눈이 내린 광주 무등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눈꽃을 즐기고 있다./김영근 기자 kyg21@chosun.com
‘등산’을 할 때면 이러한 변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쌀쌀한 이른 아침, 등산을 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준비운동을 해야 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혈관이 수축돼 있는 상태에서 등산시 땀을 많이 흘리게 되면 혈액량이 모자라 갑작스런 근육경련이 올 뿐만 아니라, 심장이나 뇌 등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급성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는 평소 고혈압이나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환절기 산행에 특히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협심증 환자가 등산을 할 경우에는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노르에피네프린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한다. 이전에 심근경색을 앓았던 사람의 경우 심실의 괴사주변으로 전기 흐름에 교란이 생겨 심실세동과 같은 치명적인 부정맥이 발생할 수 있는데, 여기에 스트레스 호르몬은 관상동맥 평활근에 작용하여 관상동맥의 수축을 유발시켜 심근으로의 혈류를 더욱 감소시키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흡연자, 고령, 당뇨, 고혈압 등의 위험인자를 동반한 경우 더욱 많이 발생한다.

심장은 전신에 퍼져있는 혈관을 통해 혈액을 공급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심장이 일하는 정도에 따라(박동수가 빨라짐) 심장은 많은 혈액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고속도로가 좁아지면 교통 체증이 생기는 것처럼 심장혈관도 좁아지면 많은 혈류량을 감당하지 못해 흉통·불쾌감·중압감 혹은 조이듯 묵직한 느낌, 연탄가스 마신 듯 답답한 증상 등을 겪게 된다. 즉, 심장혈관이 좁아진 협심증 환자는 등산시 오르막을 올라갈 때 심장이 많은 양의 혈액을 요구하기 때문에 등산을 시작하고 처음 몇 분 동안 반복되는 흉통을 느낄 수 있으며, 그 때 휴식을 취하면 금방 또 흉통이 가라앉고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이러한 반복된 상황이 산행 시작 30분 이내에 가장 많이 발생되고, 쉬면 좋아지니 ‘별거 아니겠거니’ 하고 자신의 심장 상태가 등산으로 더욱 좋아진다고 착각하면서 무리하여 정상까지 올라가게 되며, 결국은 깔딱고개나 정상에 거의 도달하여 급사하는 경우까지 발생하는 것이다.

등산을 좋아하는 한비야 씨. 세계의 수많은 나라의 긴급 구호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도 그녀는 ‘해외에서 돌아왔으니 피곤하니까 쉬어야지’가 아니라 ‘한국에 들어와 시간이 나니 등산을 해야지’ 한다고 한다. “비가 오는데...등산을?”하고 물으면, “비 온다고 밥 안 먹나요?”라고 말할 정도로 등산을 즐긴다고 한다. 그녀는 산은 오를 때마다 그 모습이 다르다고 한다. 게다가 나이에 따라서 등산하는 마음도 다르니 산도 다르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삼십때까지는 무조건 자주, 빨리 올라가야 성에 찼다고 하며, 내려오는 것도 빨리 뛰어 내려왔다고 한다. 하지만 사십대가 되니까 내려오는 길도 똑같이 재미있고 중요하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내려갈 때 쓸 힘을 남겨두어야 하산길이 즐겁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한비야씨 처럼 나도 시간이 날 때면 틈틈이 등산을 즐긴다. 겨울 산행은 산 아랫자락이 맑고 포근하더라도 위로 갈수록 눈이 내리거나 지형에 따른 변화무쌍한 기상, 빙판길 미끄럼 사고 등 여러가지 상황이 우려된다. 그래서 나 또한 몇 번이고 주춤거리게 된다. 하지만 안전사고의 우려 때문에 우리나라의 시원한 산바람을 뒤로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질환에 대한 이해와 함께 현재의 건강상태를 정기적으로 체크하면서 몸을 꾸준히 관리했다면 등산도 주저할 일은 아니다. 차디찬 바람이 지나가고 따스한 봄날이 다가오므로 친지들과 산을 가까이할 기회는 점점 많아질 것이다. 겨우내 무겁게 움추렸던 몸과 마음을 일으켜 작가 고은님의 시 한 토막을 음미할 수 있는 산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