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이름 모를 꽃'이 어딨노! |
1978년 가을 천리포수목원 설립자인 고(故) 민병갈(Carl Miller) 원장의 눈이 반짝였다. 전남 완도에서 수목원 직원들과 자생식물을 탐사 중이던 그의 앞에는 붉은 열매에 작은 가시 잎사귀가 달린 특이한 호랑가시나무가 있었다.
"가만있자…. 이 나무들 이파리가 좀 희한해."
그는 평소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흥분으로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식물도감을 뒤져본 57세 신사는 희색이 만연했다. 새로운 발견이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그는 여러 경로로 체크해 신종임을 확인하고, 새로운 식물에 학명과 '완도호랑가시'라는 이름을 붙였다. 완도호랑가시는 호랑가시나무와 감탕나무가 자연 교잡해 만들어진 나무로, 우리나라 완도에서만 자라는 희귀 품종이었다.
고인은 생전에 이 발견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완도호랑가시 이야기만 나오면 "식물학도에게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영광"이라며 "후손이 없는 나에겐 영원히 살아 있을 자식을 하나 만든 것과 다름없다"며 좋아했다.
우리나라 식물학자 중 신종을 발견한 경험이 있는 학자는 50여명에 불과하다. 바꾸어 생각하면 이 땅의 식물 거의 전부는 이미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알아보면 풀과 꽃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름 모를 꽃'이라는 표현은 일반인 글에는 물론, 문인들의 글에도 흔하디흔한 것이 현실이다.
소설가 문순태는 1970년대 소설 습작을 완성하면 서울 동대문구장 뒤편 김동리 선생 댁으로 달려갔다. 선생은 원고를 읽다가 '마을에 들어서자 이름 모를 꽃들이 반겼다' 같은 표현이 나오면 원고를 던져버렸다. "이름 모를 꽃이 어디 있어! 네가 모른다고 이름 모를 꽃이냐!"는 호통이 이어졌다. 선생은 "작가라면 당연히 꽃 이름을 물어서라도 알아야지. 끈적거리는지 메마른지 꽃잎도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봐서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해야지"라고 나무랐다. 자신도 농부들에게 이름을 물어가며 '패랭이꽃'이라는 시를 쓴 일화도 알려주었다. 문순태는 "그 말씀을 듣고 곧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식물도감을 샀다"며 "그 후로는 물가 습지식물인 물봉선이 '산꼭대기에 피어 있었다' 같은 잘못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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