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둥근털제비꽃이야."
"아냐. 여기 잔털이 보이잖아. 잔털제비꽃이지."
두 '고수'가 연보라색 제비꽃 앞에서 다투고 있었다. '도사'가 지나가다 "장비 수염은 뻣뻣하고 관우 수염은 길고 제갈공명 수염은 염소처럼 짧지만 다 호모사피엔스야. 뭐하러 그런 걸 갖고 싸워~"라고 나무랐다.
야사모(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27~28일 올 첫 정기 모임을 강원도 태백산·함백산 일대에서 가졌다. 제주도에서 비행기 타고 온 회원도 있었다.
수도권 일대는 이미 얼레지·노루귀 등 이른 야생 봄꽃들이 지고 있다. 그러나 태백산 일대는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라 봄이 늦다. 이제야 진달래가 피고 얼레지·노루귀·홀아비바람꽃·금괭이눈 등이 만발해 있었다.
야생의 한계령풀은 이번에 처음 보았다. 작고 노란 꽃들이 송이를 이루면서 핀 모습이 앙증맞다. 문제는 눈 닿는 곳마다 한계령풀이어서 어디를 밟고 다녀야 할지 난감하다는 점이었다. 한 고수님은 "나뭇가지나 바위를 밟고 다녀라"고 알려주었다.
태백산 일대는 얼레지 밭이나 다름없었다. 태백산 정상까지 가는 길 주변마다 얼레지가 꽃잎을 뒤로 확 젖힌 채 피어 있었다. 얼레지는 구름이 끼거나 추우면 꽃잎을 뒤로 젖히지 않는다. 따뜻한 낮이어야 곤충들이 꿀을 구하러 돌아다닌다는 것을 용케도 알고 있는 것이다. 김훈은 장편소설 '내 젊은 날의 숲'에서 얼레지를 "꽃잎을 뒤로 활짝 젖히고 암술이 늘어진 성기의 안쪽을 당돌하게도 열어 보였다"고 표현했다.
노루귀는 때로는 홀로, 때로는 서너 송이가 묶음으로 또는 줄지어 피어 있었다. 노루귀는 줄기와 꽃받침에 난 잔털을 보는 것이 키포인트다. 잔털이 난 모양이 노루의 귀를 닮았다고 노루귀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졌다. 흰색이 많았지만 분홍색·청보라색도 간간이 보였다.
한 여성 회원은 큰괭이밥 사진을 찍으며 "아이고 예뻐"를 수없이 반복했다. 회원들은 엎드린 자세, 쪼그린 자세, 누운 자세 등 다양한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요즘 피는 봄 야생화는 키가 작아 렌즈를 낮추어야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한 여성 회원은 한계령풀 밭에서 한참 누워 초점을 맞추다 "지쳐 쓰러진 줄 알았다"는 놀림을 받았다. 꽃을 찍는 여인들의 자세는 나이에 관계없이 관능적이다.
"꽃들이 기다리는 것은 벌이나 나비지 사람이 아니야. 우리가 카메라 들고 앞에 서면 꽃들이 뭐라고 하겠어. 아마 그럴 거야. '우리 서방님(벌·나비) 오셔야 하니까 좀 비켜주쇼'라고."
고수는 말을 이었다.
"꽃 사진을 찍는 것은 식물들의 성생활을 찍는 것이지. 일종의 식물들의 포르노지. 우리가 신혼부부의 침실에 초점을 맞추고 기다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꽃들이 사람을 좋아하겠어? 꽃에게 사람은 기껏해야 어떻게 하면 밟히지 않을까 고려하는 대상일 거예요. 우리는 꽃을 짝사랑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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