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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모음(writings)/좋은 시

by 굴재사람 2013. 11. 30.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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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성학(1971~ ) -

 

 

 

결혼 전 내 여자와 산에 오른 적이 있다

오붓한 산길을 조붓이 오르다가

그녀가 나를 보채기 시작했는데

산길에서 만난 요의(尿意)는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가혹한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벗어나

숲속으로 따라 들어왔다

어딘가 자신을 숨길 곳을 찾다가

적당한 바위틈에 몸을 숨겼다

나를 바위 뒤에 세워둔 채

거기 있어 이리 오면 안돼

아니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안돼 딱 거기 서서 누가 오나 봐봐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서서

그녀가 감추고 싶은 곳을 나는 들여다보고 싶고

그녀는 보여줄 수 없으면서도

아예 멀리 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고

그 거리, 1cm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그 간극

바위를 사이에 두고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내통(內通)하기 적당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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