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막길
- 이성부 -
이 오르막 길은 위로 올라갈수록
내가 더 낮아진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이
하늘에 가까워지는 길이라고들 말합니다만
나에게는 오히려 속진 속에서
낮게 사는 길을 가르쳐줍니다
한없이 너그럽고 바쁘지 않고
오랜 기다림에도 참을성이 깊어져
늘 새로운 것들을 살피느라 고개만 숙여집니다
산길을 걸어 올라갈 적에는 행여
벌레 한 마리라도 밟을까 봐 조심스럽고
드러난 나무뿌리들도 피해 가느라
천천히 발걸음을 딛습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 길에 갇혀졌던 내 발이
산에 들어와서는 어느 사이에
야성의 본디 모습을 되찾아 환합니다
땅기운이 그대로 내 발을 통해 머리끝까지 돌고
내 눈은 더욱 밝고 맑아져 유리알처럼
사물의 가려진 마음까지 들여다봅니다
숨 가쁘고 힘겨우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주저앉아 버리고 싶다가도 기어이 발길을 옮기는
이 지속의 밑바탕에는
분명 다물* 시절이나 고구려 때의
먼 할아버지 적 끈질긴 핏줄 유전자가
나에게 지금도 흐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한 방울 두 방울 모자챙에서 떨어지는
나의 맑은 땀방울이
작은 생명**으로 흙을 적십니다
사뭇 견디기 어려울 때에는
나무 몸통을 붙들고 잠시 쳐다보는 푸른 하늘
선 채로 숨을 가다듬어
가녀린 목숨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봅니다
더운 겉옷을 벗어 배낭에 쑤셔 넣고
다시 올라갈수록
생의 무게는 나를 눌러 더욱 힘들게 합니다만
이 길은 나 혼자서 가는 길이 아니라
낮게 사는 사람들의 모든 길임을 알게 합니다
나무꾼 장꾼 또는 쫓기거나 쫓던 사람들의 헉헉거리던 길
항상 아래를 향해 열리는 함박꽃 입술처럼
저어 낮은 곳 엎드려들 사는 곳에
어렵기는 합니다만
드높은 정신이 숨어 있는 것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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