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곽길 18km 어디서부터 걸을까? '서울성곽길' 산책의 ABC
'서울성곽길' 트래킹의 인기는 하나의 현상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걷기 열풍, 둘레길과 올레길 신드롬, 역사문화자원에 대한 관심과 맞물리면서 도보여행족의 새로운 필수 코스가 된 '서울성곽길'. 서울성곽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재목록에 오르면서 다시 한번 주목을 끌더니, 봄꽃과 신록이 피어나는 계절을 맞아 '서울성곽길'은 봄 산책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서울성곽의 공식명칭인 서울한양도성. 이 도성길 트래킹의 매력은 무엇이고, 미리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걸으면 좋을지 살펴보자.
◈ 서울한양도성 트래킹의 4가지 매력
서울한양도성이 사람들을 잡아끄는 매력은 무엇일까?
일단 도성을 따라 걸으면서, 우리가 몰랐던 서울 도심 자연환경의 매력을 아주 잘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첫 번째 요소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르게 개발됐던 도심 한복판에서 비밀의 정원과 같은 숲길과 계곡을 발견하는 새로움이 있고, 왜 하필 이곳을 최고 명당지로 보고 조선이 천도했는지를 새삼 깨닫는 즐거움이 있다.
둘째는, 도성길이 이어지는 산의 높이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 300m 높이의 북악산과 인왕산, 200m 높이의 남산, 100m 높이의 낙산, 서울 도심을 둘러싼 네 개의 산, 즉 내사산을 따라 쌓여진 성곽이 서울한양도성이다. 이 내사산의 높이가 그리 높지 않다. 가파른 성곽 계단길도 있지만, 북한산이나 관악산 등산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서울 도성 산책로는 트래킹에 가깝다. 운동화만 신었다면 젊은 남녀 커플들이 함께 데이트를 즐길 코스로서도 별 손색이 없다.
셋째는, 도성을 따라 펼쳐지는 도시 전경이다. 도성을 따라 천천히 걷다가 어느덧 100m 높이에만 올라도 서울 도심 전경이 펼쳐지고, 남산에 이르러 200m만 오르면 한강 너머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또 편안히 걷다가 북악산과 인왕산을 만나서 300m까지 천천히 오르면 내사산 바깥에서 다시 한번 서울 도성을 둘러싸는 네 개의 산, 북으로 북한산, 남으로 관악산, 동으로 아차산, 서로 덕양산, 그리고 그 너머까지 메가시티 서울의 속살과 외양, 그걸 감싸는 자연 풍경이 펼쳐진다. 게다가 북악산을 제외한 인왕산과 남산, 낙산의 도성 구간은 밤에도 거닐 수 있다. 역사의 풍치가 느껴지는 도성을 은은한 조명이 비추며 따라오고 그 도성 너머에는 서울의 화려한 야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위에 가장 핵심적인 매력은 도성을 따라 걸으면서 역사도시 서울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게 되고, 서울의 세월과 역사,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서울의 가치를 재발견하면서 내가 사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동안 개방되지 않던 청와대 근처의 북악산 성곽길이 개방되고, 인왕산 성곽길도 복원되고 도성 길이 전반적으로 정비되면서, 서울한양도성은 도보여행자들의 필수 아이템이 됐다. 도성의 4대문 중 정문에 해당하는 남대문 즉 숭례문의 복구 개방도 5월 4일로 다가오면서 시민들의 관심은 더 커지고 있다.
◈ 18km 길이의 서울한양도성, 어디서 어떻게 트래킹을 시작해야 좋을까?
조선시대에는 도성 전체를 하루 종일 한 바퀴 도는 것이 하나의 전통놀이였고, 이를 순성놀이 혹은 순성장거라고 불렀다. 지금도 가을에 서울 KYC의 도성길라잡이라는 단체가 서울시 및 종로구와 함께 진행하는 순성놀이가 있는데, 간략한 설명을 곁들인 안내와 함께 천천히 걸으면 아침 8시에 시작하면 오후 6시에 끝나니, 대략 10시간이 걸린다. 기분 좋고 뿌듯한 경험이긴 하지만 18km 구간을 한번에 다 걷기에는 좀 벅찰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서울 KYC 도성길라잡이에서 서울시 및 종로구와 함께 도성 한바퀴를 네 코스로 나눠서 도성 트래킹 안내를 매주 일요일 낮 한시반부터 3시간 정도 길이로 진행하고 있다. 북악산 구간, 낙산 구간, 남산 구간, 인왕산 구간, 이렇게 네 구간으로 나눠서 한주에 한 구간씩 역사 스토리텔링이 있는 안내 답사를 진행한다. 종로구청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시면 되고, 이 안내를 통해서 네 주 동안 도성 한바퀴를 돌 수 있다.
시작은 어느 구간부터 해도 좋다. 다만 구간마다 난이도가 좀 다른데 처음에 좀 쉽게 시작하시면, 역시 산과 지대가 낮은 동쪽 낙산 구간이 좋을 수 있다. 낙산 구간에서 시작해서, 시계방향으로 남쪽 남산 구간, 서쪽 인왕산 구간, 마지막으로 북쪽 북악산 구간, 이런 순서로 가시는 것이 원래 순성의 방향에도 맞고 난이도의 순서에도 맞으니 참고하면 좋겠다.
◈ '서울한양도성'의 기본 역사 지식을 알고 떠나면, 도성 산책은 타임머신 시간 여행!
도성 그리고 도성을 드나드는 성문에 대한 기초 지식을 알고 걸어보자. 도성 산책은 그저 봄꽃과 신록을 만나는 트래킹일 뿐 아니라, 봄볕 속에서 서울의 역사와 세월의 숨결을 만끽하는 '시간 여행'이기 때문이다.
조선이 개국과 함께 고려 제2의 수도인 남경으로 천도해 지금 서울 도심을 수도로 정하면서, 정도전은 이 수도를 철저한 유교적 원리에 따른 계획도시로 건설했다. 제일 먼저 한 것이 종교시설을 만드는 것. 불교국가 고려와 전혀 다른, 유교국가 조선을 개국하면서 유교의 종교시설인 종묘와 사직을 지었다. 종묘는 선왕의 위패가 모셔진 곳, 사직은 농경사회의 신인 땅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지내던 곳. 종교시설을 만든 후 지은 것이 정치공간인 경복궁. 경복궁을 지으면서 이어서 쌓은 것이 군사방어시설, 곧 성곽이다. 그리고 경제시설인 시전이 만들어졌다. 정도전은 이 모든 것을 "주례고공기"라는 책에 담긴 유교의 전통적 도시계획원리에 따라 우리 자연환경에 적용시켜 배치했다.
성곽은, 조선의 수도였던 서울 사대문안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네 개의 산, 북쪽의 북악산(백악), 서쪽의 인왕산(인왕), 남쪽의 남산(목멱), 동쪽의 낙산(타락), 내사산이라고 일컫는 이 네 개의 산에 둘러서 쌓았다. 그 성곽 둘레 길이가 18km. 이 18km 중에 무려 12km가 지금도 남아 있다. 성곽이 옛 도심을 둘러싼 네 개의 산 능선을 따라 쌓여서 서울의 무차별적인 개발 속에서도 산에 있는 성곽들이 그대로 보존돼있었기 때문이다. 도성의 높이가 10m가 넘으니 성문이 없이는 사람이든 물자든 드나들 수 없었다. 그래서 만든 것이 4대의 대문과 4개의 소문.
4개의 산 밑에 있는 4개의 대문과 도성 한가운데의 종루를 유교의 핵심 가치인 오상, 즉 인의예지신을 붙여서 이름 지었다. 남산 밑의 남대문을 '숭례문', 인왕산 밑의 서대문을 '돈의문'(이 문이 원래는 사직터널 근처에 있다가 세종 때 지금의 서대문 자리로 옮겨졌는데, 새로 옮겨진 문을 그 당시에 '새문'이라고 부르면서, 지금까지도 서대문을 새문이라고 부르고, 그 안의 도로를 새문안길 혹은 신문로라고 부르게 됐다), 북악산 위의 북대문을 '숙정문'(여기에 智가 들어가야 하는데 '지혜로움'이라는 덕목이 당시 민주국가가 아닌 봉건왕조에서 백성이 지녀야 할 덕목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생각에 '지혜로움'보다 급이 좀 낮은 '꾀'를 뜻하는 꾀 정 靖자를 썼다는 설명이 있다. 智는 결국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탕춘대성의 '홍지문'에 쓰였다), 낙산 밑의 동대문을 '흥인지문'(흥인문이라는 이름이 맞을 텐데 여기에만 之를 넣은 이유는, 동쪽 지세가 낮아서 산세의 형상을 가진 갈 지자를 넣어 낮은 지세를 보강하려는 뜻이었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설명) 그리고 도성 한 가운데 있는 '보신각'. 백성들이 도성을 드나들 때마다 공간과 대화하며 유교 이념을 체득하도록 하기 위한 정도전의 기획이었다. 지금 숭례문과 흥인지문, 숙정문이 남아 있고, 서대문인 돈의문은 일제강점기에 훼철된 채로 빈자리다.
그리고 4대문 사이사이에 소문을 뒀으니 그것이 4소문. 지금 북소문인 창의문, 남소문인 광희문이 예전 모습으로 남아있고(단 광희문은 1975년에 그 위치만 남쪽으로 조금 옮김), 혜화문은 20년 전에 본래 위치에서 서쪽으로 조금 비껴선 자리에 복원해놓았다. 서소문인 소의문만 역시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채로 빈자리. 그러니까 지금은 서대문과 서소문만 없는 상태다.
이 성곽을 산 위의 석성, 평지의 토성으로 처음 쌓은 이는 조선을 개국하고 천도한 태조 이성계. 그리고 그 다음, 성곽을 석성으로 전면 보수한 이가 조선의 국가 체제를 전면 정비했던 세종 (태조 때는 전국 팔도에서 약 12만명, 세종 때에는 32만명의 백성들을 동원해서 축성했고, 이 과정에서 사고로 죽은 이들이 1천명 가량, 부상당한 이들은 그 몇배로, 도성에는 이런 우리 민족의 땀과 희생이 배어있다). 그 다음으로, 백성이 아닌 군사들을 동원해서 정방형의 돌로 반듯하고 튼튼하게 대대적인 정비를 한 왕이, 병자호란 이후 청의 간섭에서 살짝 비켜서 있던 숙종. 그리고 해방 후 개발로 훼손된 성곽 복구해 나선 인물이 일본군 장교 출신이라는 굴레를 벗고자 전통문화재 복구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
크게 이렇게 4차례에 걸쳐 성곽이 만들어지고 고쳐졌다. 도성을 따라 걸으면 바로 이 네 시기마다 서로 다르게 쌓인 성곽의 모습이 세월의 나이테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이것이 도성을 걷는 중요한 매력이다.
그리고 도성을 쌓을 때, 여러 구간별로 책임자와 감독자를 둬서, 지역의 이름과 책임자의 이름을 성곽에 새기도록 하고 하자보수까지 책임지게 하는 이른바 공사실명제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했다. 지금도 지역명과 책임자를 성돌에 새긴 글자, 즉 '각자'가 도성 곳곳에 남아있다. 도성을 걸으면서 이런 각자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 서울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능성은?
서울한양도성이 지난해 11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재목록에 올랐다. 후보에 올랐다는 의미로, 정식 목록 등재의 과제는 지금부터다. 서울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 도성 성곽 중에서 세계 최장 기간 도성 역할 수행했고 남아있는 수도 도성으로 세계 최장 길이를 자랑한다. 그리고 산과 평지의 자연적 지형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살리면서 쌓는 우리 고유의 성곽 건축 양식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역사도시 서울의 세월의 흔적을 잘 보존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가 인정을 받고 있는 서울한양도성이기에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능성이 작지 않다.
2015년 등재를 목표로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 서울한양도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단순한 성곽 건축물의 관광자원화를 뛰어넘는 의미를 지닌다. 도성이라는 말은 성곽 자체를 뜻하기도 하고, 그 성곽이 품은 도읍 전체를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서울한양도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려는 시도를 계기로 삼아, 우리도 단지 성곽뿐 아니라 성곽이 품은 공간, 즉 도읍지였던 서울 옛 도심 자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유럽의 많은 역사도시의 옛 도심들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것처럼 말이다. 이건, 단순한 성곽만을 세계적인 문화자원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그것이 품고 있는 서울 사대문안 도심 전체의 역사문화와 생태 복원으로 연결시켜서 옛 도심 전체를 역사도시로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단순히 역사를 관광자원을 개발해서 돈을 벌자가 아니다. 서울에 대한 시각, 수도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사는 방식, 도시계획의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를 암시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기폭제가 바로 서울한양도성이다. 지금 우리가 걸어갈 곳은, 이곳 성곽도시 서울의 둘레길, 바로 서울한양도성길이다.
도성 이야기는 그 자체로 무궁무진해서 방송으로 여러 차례 시리즈로 다뤄야 할 내용이다. 도성 안 4개의 구간, 4개의 도성 지역에서 둘러볼 곳도 넘쳐흐른다. 일단 이번 기사에서는 그 간략한 개괄만 설명을 드렸으니, 이를 바탕으로 일단 어느 구간이든 한번 산책을 떠나보길 권한다.
여기서 꼭 주의하실 건, 북악산 구간만은 군사제한지역으로 입장 시간이 3월부터 10월까지 하절기에는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로 제한돼 있고, 퇴장시간은 6시(동절기에는 오전 10시~오후 3시, 퇴장시간은 5시), 신분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점! 입장료는 물론 무료. 다른 구간들은 이런 출입 제한이 없다.
어느 구간을 누구와 걸으셔도 좋지만, 특별히 이야기가 있는 안내를 따라가시는 것을 추천한다. 아까 말씀드린대로 서울KYC 도성길라잡이라는 단체에서 종로구와 함께 도성 한바퀴를 한달 동안 한주에 한 구간씩 네 차례에 걸쳐 답사하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북악산 구간, 낙산 구간, 남산 구간, 인왕산 구간, 이렇게 네 구간으로 나눠서 한주에 한 구간씩 역사 이야기가 있는 안내 답사를 진행하니까, 종로구청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봄꽃과 신록, 도심 전경을 배경으로 뻗어있는 도성길을 걸으면서, 역사도시 서울의 숨결과 계절의 낭만을 함께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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