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서 10분 거리. 하지만 1980년대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곳. 북악산 가장자리.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칠보사라는 절을 지나 좁은 골목길을 한참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대나무 쪽문. 그 너머 깊숙이 `통(通)`이라는 이름의 공간에서 `이철용`을 만났다.
그는 사주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역술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선 후보들 사주를 풀이했더니 최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박원순 서울시장더러 사주가 좋으니 서울시장 재보선에 나가면 될 것이라고 권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반질반질 깎은 머리와 둥근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선명한 눈빛에서 고승의 카리스마가 전해 왔지만 기독교인이란다. 혼란스럽다. 악수를 하려고 일어서는데 보니 왼쪽 다리를 절었다. 3급 지체장애인이다. 사상 최초의 장애인 지역구 국회의원 출신이다. 그는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제13대 당시 평민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글을 쓰고 있었다. `사주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주제로 한 책이다. 풍물시장 노점 한편에서나 눈에 띌 듯한 제목이다 싶은데 그는 이미 왕년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대학 시절 선배들 권유로 한 번쯤 봄직한 `어둠의 자식들` `꼬방동네 사람들`이 그의 작품이다.
-올해 대선일 운은 누구에게 기울어 있나.
▶12월 19일은 갑인(甲寅)일이다. 그러면서 목(木) 기운이 강한 날이다. 박근혜 후보가 나무 기운이 강한 사주다. 올해 임진년을 맞아서 목 기운이 많이 강해졌고 대선 당일도 목 기운이 세다. 그런데 갑인일은 호랑이 날이기도 하다. 안철수 후보가 호랑이띠다. 호랑이 기운도 만만치 않다.
안 후보가 인(寅ㆍ호랑이), 박 후보가 묘(卯ㆍ토끼), 문재인 후보가 진(辰ㆍ용)이다.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동쪽이다. 이를 방합(方合)이라고 한다. 그러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인은 음력 1월, 묘는 음력 2월, 진은 음력 3월이다. 음력 1월은 봄이다. 변화를 의미한다. 정치의 새바람이다. 음력 2월은 봄이 무르익는 계절이다. 풍성하다. 음력 3월은 여름으로 가는 길목이다.
-후보들 개인 운은 어떤가.
▶박 후보는 나무 기운이 세다고 했다. 그런데 가지 많은 나무는 바람 잘 날이 없다. 홍사덕 현영희 송영선 김재원. 박 후보 측근이 줄줄이 사고를 치고 있다. 나무 기운이 너무 강해서 그렇다.
사주는 그렇다치더라도 저마다의 `얼`이라는 게 중요하다. 박 후보는 눈 얼이 좋다. 그런데 귀 얼과 혀 얼이 약하다. 듣는 게 약하고 말하는 게 약하다는 거다. 혀 얼이 약하니 `인혁당`을 `민혁당`이라고 그러고 실수하지 않나.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말 조심해야 한다.
안 후보는 눈 얼도 좋고 귀 얼도 좋다. 그래서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다. 그런데 코 얼이 부족하다. 이(利)를 위해서 의(義)를 포기하기 쉬운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
문 후보는 귀 얼이 아주 좋다. 남의 얘기를 잘 듣는다. 대선 조직을 보더라도 수평적 조직으로 꾸려져 있다. 하지만 기반이 부족해서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 주변에 사람이 많지만 대개 안 후보와 문 후보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형국이다. 여차하면 안 후보에게 모든 걸 뺏길 수도 있다. 끝까지 사람들을 지켜낸다면 승산도 있다.
- 대선 후보들은 그렇다치고 우리나라의 운은 어떤가.
▶기운이 좋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내년에 우리나라는 삼재가 있다.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경제위기가 있고, 대내적으로는 양극화가 있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정치적으로 훌륭한 대통령이 나오기 어렵다는 거다. 지금 후보들 중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대통령이 되고 나면 아주 힘들어질 거다. 물가도 오를 것이고 실업도 늘어날 것이다.
지금 대통령 후보들은 전부 자기가 대통령 되면 잘하겠다고 하지만 진정으로 민생을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 어쩌면 국민이 속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 차기 대통령은 어떻게 해야 하나.
▶사회안전망 구축이 중요하다. 기초수급자, 차상위계층의 삶의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그런 것에 모든 힘을 집중해야 한다. 요즘 우울증 환자가 많다. 여기 찾아와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많다. 장사는 안 되고, 젊은 사람들은 취직도 안 되고, 물가는 올라가는데 벌이는 시원찮고. 우울할 수밖에 없다.
우울증이 극단적으로 가면 자살로 간다. 자살률 높은 게 그냥 높은 게 아니다. 그런데 우울증이 자살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타살로 나타나기도 한다. 마냥 세상이 싫으니까. 묻지마 범죄가 왜 일어나느냐, 그것도 우울증의 극단적인 단면이다.
묻지마 범죄가 생기면 그 사람만 잘못했다고 할 수 없다. 사회가 그렇게 몰아간 것이다. 지도자들이 반성해야 한다. 소를 잃고 소만 탓할 수 없다. 소도둑도 문제가 있고 외양간도 문제가 있는 거다.
-역대 대통령은 어땠나.
▶이명박 대통령은 금(金) 기운이 강했다. 그러니 목(木)의 박근혜 후보보다 우세했다. 하지만 본인의 사주보다 참여정부 실패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원래 사주라는 게 당사자 사주만 갖고 볼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 주변 사람, 주변 여건과 맞춰봐야 한다.
참여정부 때 경제가 파탄 나니까 경제대통령 하나로 대통령이 됐는데 사실 우리나라는 경제가 문제가 아니었다. 빈부격차, 계층 간 갈등, 양극화 이런 게 문제였지. 이 대통령도 대통령이 되고 나서 보니까 경제가 문제가 아니거든. 그래서 공정사회, 공생발전 이런 것을 들고 나왔고 결국 대통령 후보들도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오게 된 것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나.
▶내가 김대중 대통령 영결식에는 갔지만 봉하마을에는 안 갔다. 노 대통령이랑 나는 13대 국회의원 동기다. 함께 5공 청문회를 했다. 아주 친했다. 대통령을 마치고 봉하마을로 내려간다고 할 때도 박수를 쳤다.
그런데 자살을 택했다. 그때부터 나는 노 대통령 얘기를 안 한다. 이 땅에 노 대통령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여기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정말 어려운 사람들이다. 시장 바닥에서 다리 없이 기어 다니면서도 나프탈렌 팔아서 먹고살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두고 대통령까지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건 용서받을 수 없다.
-기독교인이 어쩌다 사주를 보게 됐나.
▶사주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너는 크게 다칠 팔자다` 하면 반드시 다치는 그런 운명론이 아니다. 그건 정말 미신이고 혹세무민이다. 사주는 데이터를 갖고 통계적으로 분석해서 기질이나 경향을 보는 거다. 혈액형 갖고 성격을 맞춰보는 것하고도 얼추 비슷하다.
일기예보에 비유할 수도 있다. `내일 비가 온다`라고 얘기해 주면 그 사람은 다음날 우산을 들고 나가서 비를 안 맞을 것 아닌가. 물론 예보가 틀릴 수도 있고, 예보를 했는데도 본인이 우산을 두고 가서 비를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도움은 된다.
하나 더 얘기하면 `너는 나이 마흔에 큰 병이 온다`라고 하면 좀 더 조심할 것 아닌가. 그러면 병을 피해갈 수 있다. 그 얘기를 듣고도 함부로 살면 진짜 병이 오는 거고.
-그래도 기독교에서 비판하지 않나.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게 잘못된 거다. 일월화수목금토, 해와 달 그리고 다섯 행성을 상징한다. 그래서 음양오행이다. 그런데 선데이, 먼데이는 괜찮고 일, 월은 안 된다고? 그건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이 책을 쓰려고 하는 거다. 사주에 관한 오해와 진실.
-살아온 인생 역정이 남다르다.
▶얘기가 길다. 서울 중구 필동, 지금 대한극장 뒤편 동네에서 태어났다. 태어나고 6개월 만에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결핵균이 나한테 옮아 결핵성 관절염이 됐다. 병원에서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했는데 어머니는 `죽었으면 죽었지 자르는 건 안 된다`고 버텨 결국 한쪽 다리가 짧아졌다.
과부가 된 어머니는 행상을 해서 우리를 먹여 살렸다. 아이들은 절름발이라고 놀렸다.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종암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내게 남은 건 `악`과 `깡`뿐이었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돈`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네 살에 지나가는 사람들 돈을 빼앗다가 노상강도로 소년원을 다녀왔다. 나랑 비슷한 애들을 규합해 낮에는 구두닦이를 시키고 밤에는 김밥을 팔게 했다.
말 그대로 `왕초` 노릇을 했다. 잘나갈 때는 100명 정도를 거느렸다. 당시 통행금지에 걸리면 경찰서를 찾아가서 빼오고 하는 역할도 하면서 세를 늘렸다.
-어쩌다 마음을 고쳐 먹었나.
▶살다 보니 내가 데리고 있는 애들도 그렇고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대 초반인 1972년 야학을 차렸다. 신설동 4번지. 실향민들이 청계천 뚝방에 만든 동네다. 노숙자도 있고 막노동꾼도 있고 매춘부도 있고 포주도 있었다. 그야말로 막장 인생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나중에 책 `꼬방동네 사람들`의 배경이 된 곳이다.
동네 교회를 찾아가 교사를 좀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교사로 오셨던 분이 연세대 도시문제연구소에서 활동하셨던 박창빈 목사, 당시 서울대 상대를 다니던 전주범 전 대우전자 사장, 박명희 건국대 교수 같은 분들이었다.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도 이때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박창빈 목사 소개로 빈민운동가 허병섭 목사를 만나게 됐다. 이 분들을 통해서 나는 깨달았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돈`이 아니라 `정의`라는 걸.
-세상을 살아가는 철학이 바뀐 건데 그 이후로는 어떤 활동을 했나.
▶1970년대 중반 유신 찬반투표가 있었다. 낯선 사람들이 투표용지를 돌리면서 투표함에 갖다 넣으라고 하더라. 찬성이라고 이미 기표가 돼 있는 투표용지였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기자를 불러다가 폭로했다.
그랬더니 국민투표법 위반이라고 구속시켰다. 1975년 1월 28일에 결혼했는데 2월 10일 구속됐다. 감방에서 매일 `박정희 물러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돈`을 위해 썼던 `깡`을 `정의`를 위해 쓰기 시작한 거다.
그때 내가 수감된 방이 5사 하3방이었다. 5사 하1방에는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된 이수병 씨가 수감돼 있었는데 나랑 잘 지냈다. 사형집행 하루 전인 그해 4월 9일에도 나랑 운동을 같이했다.
이듬해에는 간첩 혐의로 서대문경찰서 안에 있는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 박형규 목사도 같이 잡혀 들어갔다. 사흘 동안 잠을 안 재우면서 종이에 `김일성 장군 만세`를 쓰라고 하더라. 매를 맞아 가면서 1000번도 넘게 썼다. 그랬더니 꿈에도 그게 나오고 잠꼬대도 하게 되더라.
그러다 깨서 보니 감시관이 잠들어 있길래 그 길로 도망 나왔다. 그렇게 탈출을 해서 모 선교사 도움으로 합정동 수녀원에 숨어들었다. 거기서 기자회견문을 만들어 외신에 폭로했다. 그게 제2의 인혁당 사건 공작의 전말이다.
그러고 나서 긴급조치 9호로 다시 구속됐다. 1978년 3월 부활절 사건도 주도했다. 같이했던 멤버들이 모두 8명이었는데 전태일 열사 동생인 전태삼, 고 김근태 의원 부인인 인재근 의원, 노회찬 의원 등이었다.
-어떻게 국회의원이 됐나.
▶빈민운동을 한창 하고 있는데 문익환 목사와 민주화운동을 이끈 이문영 고려대 교수가 찾아왔다. 그러면서 대의정치체제에서 민중의 대변자가 국회에 들어가야 한다고 설득을 해서 도봉구에서 공천을 받았다.
투표를 20일 앞두고 공천을 받아서 리어카에 `어둠의 자식들` `꼬방동네 사람들` 책을 싣고 다니면서 `이거 쓴 이동철이 필명이고 본명은 이철용입니다. 제가 이철용이고 필명이 이동철입니다`라면서 책을 팔아 선거비용을 마련하고 선거운동도 했다.
■ He is…
△1948년 서울 출생 △1961년 종암초등학교 졸업 △1972년 은성학원 원장 △1978년 기독교도시빈민선교협의회 위원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1996년 신한국당 서울 강북을지구당위원장 △현 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 이사장
[매일경제] 이진명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기사입력 2012.09.29 08:53:53 | 최종수정 2012.09.29 10: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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