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와 경칩이 지났건만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른 봄 약화됐던 시베리아 고기압이 세력을 회복해 기온이 내려가는 현상을 ‘꽃샘 추위’라 한다.
풀어 보면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는 추위’로 운치 있는 표현이다.
잎이 나오는 것을 시샘하는 추위라는 뜻으로 ‘잎샘추위’라고도 한다. 이때 불어오는 쌀쌀한 바람은 ‘꽃샘바람’이라고 한다.
봄추위를 중국에서는 ‘춘한’(春寒), 일본에선 ‘하나비에’(花冷え)라 부른다. ‘춘한’은 글자 그대로 봄추위를 뜻하는 단순한 말이다. ‘하나비에’는 ‘꽃추위’ 정도로 ‘춘한’보다 비유적 표현이긴 하지만 단순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에 비해 ‘꽃샘추위’는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는 추위(추위를 의인화)로, 시심(詩心)이 가득 배어 있는 말이다. 우리말이 시적이고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다.
봄은 왔으나 꽃샘추위로 봄 같지 않게 느껴질 때 ‘춘래불사춘’이란 말도 많이 쓰인다. 중국의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왕소군(王昭君)이 흉노족 왕에게 끌려가는 가련한 처지를 빗대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이라 읊은 시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랑캐 땅에는 꽃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답지 않다는 뜻이다. 고달픈 인생살이를 비유적으로 일컬을 때 주로 사용된다.
“꽃샘잎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이른 봄철에 찬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변덕을 부리는 추위가 만만치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봄추위와 늙은이 건강”이라는 속담도 있다.
당장은 대단한 것 같아도 이미 기울어진 기세라 오래가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중앙일보]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입력 2012.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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