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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백석의 여인1 -자야의 사랑)

글모음(writings)/좋은 시

by 굴재사람 2011. 8. 25.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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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백석의 여인1 -자야의 사랑)

 

                                                 - 이 생 진 -

 

 

여기서는 실명이 좋겠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백석(白石)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김영한(金英韓)이라고

 

한데 백석은 그녀를 자야(子夜)라고 불렀지

이들이 만난 것은 20대 초

백석은 시 쓰는 영어 선생이었고

자야는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그들은 죽자사자 사랑한 후

백석은 만주땅을 헤매다 북한에서 죽었고

자야는 남한에서 무진 돈을 벌어

길상사에 시주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기운 없이 누워 있는 노령의 여사에게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천억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무슨 후회?

 

그 사람 생각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천금을 내놨으니 이제 만복을 받으셔야죠

'그게 무슨 소용있어'

기자는 또 한번 어리둥절했다

 

다시 태어나신다면?

'어디서? 한국에서?

에 한국?

나 한국에서 태어나기 싫어

영국쯤에서 태어나서 문학 할 거야'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거야'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했다

 

사랑을 간직하는데 시밖에 없다는 말에

시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 석 -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뱁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오막살이집)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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