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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이 무너진다

글모음(writings)/토막이야기

by 굴재사람 2011. 7. 16.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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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이 무너진다

 

 

법당에서 두 눈을 감고 좌선 중이던

유엄선사가 하루는 갑자기 벌떡 일어났어요.

그러더니 불이라도 난 듯이 고함을 질러댔죠.

"법당이 무너진다. 법당이 무너져!"
주위에 있던 스님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평소 말이 없던 유엄선사가

고함을 지른 것만 해도 놀라운데,

법당이 무너진다고 하니 난리가 났죠.

바깥에 있던 제자들도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어떤 이들은 기둥을 꼭 붙들고,

또 어떤 이들은 버팀목을 찾으러 이리저리 뛰어다녔죠.

법당 안에 있던 물건들을 바삐 밖으로 끄집어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고함을 지른 유엄선사는 딴판이었죠.

가만히 구경만 하는 겁니다.

한참 지켜보더니 손을 내저으며 말했죠.

"이놈들아, 그런 말이 아니야."

그렇게 말한 유엄선사는 웃기 시작했습니다.

배를 잡고 한동안 웃음을 터트리더니 갑자기 뚝 그쳤습니다.

그리고 숨을 거두었죠.

 

- 백성호기자의 현문우답 -

 

*유엄선사가 말한 '법당'은 어디일까요.

그건 제자들이 무너질까봐 노심초사했던 전각(건물)이 아닙니다.

바로 유엄선사의 '몸'입니다. 법당이란 게 뭔가요. 부처를 모신 곳입니다.

내 안이 부처로 꽉 차있으면 법당이 따로 없죠. 내가 바로 법당이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죠. 내 안에 예수가 거하면 내 몸이 예배당이 됩니다.

 

그러나 법당이 무너져도 부처의 자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내 안이 부처로 차는 순간, 안팎이 터지기 때문이죠.

그때는 내 안이 밖이 되고, 내 밖이 안이 됩니다.

안에도, 밖에도 부처만 가득할 뿐이죠.

그래서 부처의 자리에 들면 '오고 감'이 없습니다.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유엄선사는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박장대소를 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법당은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내 안에 눈곱만한 집착, 깨알만한 욕망이 있어도 법당을 못 봅니다.

그 작은 집착과 욕망이 우주만한 크기로 다가오기 때문이죠.

그래서 비우고, 비우고, 또 비워서 법당이 드러나는 순간에야 깨닫습니다.

'하늘을 덮던 집착과 욕망이 실은 눈곱만한 먼지였구나.'

그제야 내 몸이 법당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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