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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모음(writings)/꽃과 나무

by 굴재사람 2011. 4. 5.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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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목련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이른 봄 이른 새벽/창 밖에 나지막이 소곤닥이는 인기척//북으로 난 내 작은 창문 틈/속살이 유난히 흰 북구의 여인이 옷을 벗는다/허리춤에 걸린 잿빛 털외투 위로/봉곳한 등에 뽀얀 젖살이 흐른다//훔쳐보는 여인의 몸은 왜 이리도 눈이 부실까?"

내가 오래전에 써놓고도 스스러워 숨겨두었던 '목련'이란 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창문 한가득 저마다 수줍게 옷을 벗는 우윳빛 목련꽃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한결같이 북쪽을 바라본다. 옛사람들은 이를 두고 임금을 향한 충절을 떠올렸다고 한다. 생물학적으로는 남쪽의 꽃덮개 세포들이 북쪽 세포들보다 햇빛을 많이 받아 더 빨리 자라기 때문에 자연히 꽃봉오리가 북쪽으로 기우는 것이다.

2008년부터 교육과학기술부가 노벨상 수상자 등 연구 역량이 탁월한 해외 연구자들을 초빙하여 우리 대학의 연구 수준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시작한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World Class University) 육성사업' 덕택에 나는 지금 미국 예일대 산림환경대학 학장인 피터 크레인 경(Sir Peter Crane)과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크레인 경은 일찍이 미국 시카고자연사박물관 관장과 영국 큐(Kew) 왕립식물원 원장을 역임하고 2004년 영국 왕실로부터 작위를 받은 식물학자로서 특히 꽃의 진화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다. 그는 최근 취리히와 시카고의 고에너지가속기를 이용한 컴퓨터 단층촬영(CT) 기법으로 꽃의 기원을 연구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목련꽃은 고대 식물의 꽃들과 구조적으로 매우 흡사하단다.

1998년 디즈니 영화사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뮬란'(목련의 중국어)의 주인공은 중국 여인이었지만, 나는 목련꽃을 보면 1930년대 얼음같이 차가운 아름다움으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스웨덴 출신의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가 떠오른다. 목련에서는 왠지 얼음 냄새가 난다. 실제로 목련은 약 1억년 전에는 북극지방을 중심으로 북반구 전역에 걸쳐 널리 분포했다. 그 당시 북극지방의 기후는 지금의 유럽 수준이었다가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빙하로부터 안전한 남쪽에 분포하던 목련들만 살아남아 오늘에 이른다. 목련은 어쩌면 오늘도 고향이 그리워 북쪽을 바라보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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