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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대해서

글모음(writings)/좋은 시

by 굴재사람 2010. 12. 1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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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라 해서 다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다 험하고 가파른 것은 아니다

어떤 산은 크고 높은 산 아래

시시덕거리고 웃으며 나즈막히 엎드려 있고

또 어떤 산은 험하고 가파른 산자락에서

슬그머니 빠져 동네까지 내려와

부러운 듯 사람사는 꼴을 구경하고 섰다

그리고는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순하디순한 길이 되어 주기도 하고

남의 눈을 꺼리는 젊은 쌍에게 짐즛

따뜻한 숨을 자리가 돼주기도 한다

그래서 낮은 산은 내 이웃이던

간난이네 안방 왕골자리처럼 때에 절고

그 누더기 이불처럼 지린내가 배지만

눈개비나무 찰피나무며 모싯대 개숙에 덮여

곤줄박이 개개비 휘파람새 노랫소리를

듣는 기쁨은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들이 서로 미워서 잡아줄일 듯

이빨을 갈고 손톱을 세우다가도

칡넝쿨처럼 감기고 어울어지는

사람사는 재미는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이 다 크고 잘난 것이 아니듯

다 외치며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니듯

산이라 해서 모두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모두 흰구름을 겨드랑이에 끼고

어깨로 바람 맞받아치며 사는 것이 아니다

 

- 신경림 '산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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