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건배주
1995년 미 · 러 정상회담차 워싱턴을 방문한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한밤중 술 취해 거리를 배회하다 미 대통령 경호실 요원들에게 걸렸다. 속옷 바람으로 택시를 잡으려던 그는 혀 꼬부라진 소리로 '피자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테일러 브랜치 '클린턴의 테이프'>
지난해 2월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 · 중앙은행 총재회의에 참가했던 나카가와 쇼이치 일본 재무상이 기자회견에서 초점 잃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횡설수설하다 결국 사퇴했다. 이후 8월 총선에서 패배한 그는 10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쯤 되면 술은 백약(百藥)의 장(長)이 아닌 백독(百毒)의 우두머리다. 술의 별칭에 천록(天祿:하늘이 주는 복록) 망우물(忘憂物:근심을 잊게 하는 것) 소수추(근심을 쓸어버리는 빗자루)와 함께 미혼탕(迷魂湯:혼을 미혹시키는 탕)이 포함된 것도 술에서 비롯되는 그같은 화(禍)에서 생겨났을 게 틀림없다.
그런데도 연회엔 예로부터 술이 빠지지 않는다. 지나치면 정신을 잃고 돌이키기 힘든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피로나 긴장감을 덜어주는데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마음을 열고 상대방을 받아들이게 하는 까닭이다.
11월 11~12일 열리는 G20 정상회의 및 비즈니스 서밋(10~11일)에서 사용될 건배주와 만찬주 선정을 앞두고 주류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소식이다. 다른 행사도 아닌 G20 회의 때 쓸 술인 만큼 다들 얼마나 총력을 기울이고 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정상회담이나 국제회의 건배주의 경우 유명 와인을 쓰기도 하지만 자국 전통주를 이용하는 일도 잦다. 1972년 중국에서 이뤄진 닉슨과 마오쩌둥의 미 · 중 정상회담에선 '마오타이', 2000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선 백두산 자생 들쭉으로 빚은'들쭉술', 2004년 한 · 일 정상회담에선 모리주가 등장했다.
건배주 외에 만찬주로 막걸리가 오를지도 관심거리다. 어떤 술이 쓰이든 참가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기만 하면 국내외에서 인지도가 급상승할 건 물론 세계 시장 진출 발판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면 뭐니뭐니해도 술맛이 뛰어나야 할 테고 술병과 술잔도 돋보여야 한다. 모쪼록 술맛 술병 술잔 모두 어우러진 건배주로 세계적인 명품주가 탄생되기를 기대한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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