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술잔에 먹고 싶은 만큼 따라 마시는 음주 문화를 자작문화, 중국이나 러시아ㆍ동구처럼 잔을 맞대고 건배를 하고 마시는 것을 대작문화라 한다면, 우리 한국 사람들처럼 술잔을 주고 받으면 마시는 음주문화는 수작문화라고 한다.
일본도 한 때 수작을 한 적은 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 현재 술잔을 주고 받는 수작을 하는 민족은 우리 말고는 아프리카의 어느 종족 밖에 남아있지 않다.
수작문화의 기원을 더듬어 오르면 사람과 사람을 정신적으로 결속시키는 숭고한 수단으로, 죽음으로써 약속한 것을 보증할 필요가 있을 때 한 잔에 쏟아 부은 짐승피를 나누어 마시는 혈맹을 하였고 신라 화랑들이 했듯이 한솥 차를 나누어 마심으로써 공생공사를 다지는 다례로 진화하였으며, 그것이 한잔 술을 나누어 마시는 수작으로 다시 진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주 포석정에서는 신라의 군신이 둘러앉아 한 잔 술 곡수에 띄워 돌려 마심으로써 일심동체를 다졌고, 세조는 쿠데타 음모를 진행 중이던 시절부터 회심의 술자리에서는 바지춤에 숨겨갖고 다니던 표주박을 꺼내 한잔 술을 나누어 마심으로써 은밀히 뜻을 다져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으며, 또 여진족을 토벌하고 온 신숙주와 더불어 궁벽(宮壁)에서 표주박 하나를 따 이를 갈라서 술을 담아 나누어 마심으로써 군신의 일심동체를 다졌다.
옛 우리 관청 풍습으로 한 말들이 커다란 술잔인 대포(大匏)를 마련해 두고 일정한 날을 잡아 상하 차별없이 한 잔 술을 돌려 마심으로써 일심동체를 다지는 의식이 보편화되어 있었는데, 각 관청마다 그 대포잔 이름이 달라서 사헌부는 아란배(鵝卵杯), 교서관은 홍도배, 예문관은 장미배(薔薇杯), 성균관은 벽송배라 했다.
시사같은 풍류객들의 모임에서는 연종음을 했는데, 연잎에다 술을 채우고 연대에 구멍을 뚫어 그 연대를 통하여 돌려마시는 것이었으며, 탕아들은 기방에 모이면 화혜음을 했는데 기생의 꽃신에다 술을 따라 돌려마셨으며, 민간에서도 혼례때 합근례라 하여 표주박잔에 술을 따라 신랑과 신부가 입을 맞대고 마시는 절차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