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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의 와인

라이프(life)/술

by 굴재사람 2010. 7. 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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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의 와인

 

 

"신은 물을 만들었을 뿐이지만 인간은 와인을 만들었다." 작가 빅토르 위고가 한 말이다. 신이 세상 만물을 창조했다지만 와인 특허권은 인간에게 있다는 얘기다. 보들레르는 '포도주의 영혼'이라는 시까지 바쳤다. '알지 그 뜨거운 언덕에서/ 내게 삶을 선사하기 위해 또한 내게 영혼을 불어넣기 위해/ 얼마만큼의 고통과 얼마만큼의 땀과 또 얼마만큼의 뜨거운 태양이 필요한지를….'

▶와인은 등급이 높아질수록 즐기는 사람 숫자가 줄어든다. 작가 레보비츠는 "위인(偉人)들은 사상에 대해, 보통 사람들은 일상사에 대해, 소수의 사람들은 와인에 대해 얘기한다"고 했다. 고급 와인을 선망했던 오펜바흐는 "왜 사람들은 나쁜 와인을 큰 잔에 마시고, 좋은 와인은 작은 잔에 마실까"라며 능청을 떨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엊그제 전경련 회장단을 초청한 만찬에서 프랑스산 고급 와인을 대접했다고 한다. 부르고뉴의 화이트와인 '몽라셰'와 보르도 레드와인 '페트뤼스'가 식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몽라셰를 좋아했던 영화감독 히치콕은 "대화란 좋은 와인의 적(敵)"이라고까지 했다. 명품 와인을 즐길 땐 대화도 거추장스럽다는 얘기다. 페트뤼스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결혼식 때 등장한 명품이다.

▶국내 수입가격이 한 병에 최소 100만~200만원 이상 하는 와인들이지만 전경련 회장단이 마신 것의 가격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같은 페트뤼스라 해도 포도 품질과 연도에 따라 한 병에 500만원 넘는 게 있다. 얼마 전 어느 수입업체가 2006년산 페트뤼스를 240만원에 할인 판매한다고 선전한 일이 있다. 지난 2월 한 백화점은 로마네콩티와 페트뤼스로 구성된 선물 세트를 1700만원에 팔기도 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들과 와인을 마시면서 '향연'(심포지엄)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사랑의 신 '에로스'를 찬양하면서 사랑을 주제로 갑론을박했다. 와인에 물을 타 마셨기에 토론엔 지장이 없었다. 그날 어떤 와인을 마셨는지도 중요하지 않아 대화록만 전해온다. 전경련 회장단은 와인을 마시며 동계올림픽 유치와 한국 경제 발전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러나 시중 화제는 그날 마신 와인 값이다. 물론 재계 지도자들이 나눈 대화가 열매를 맺기만 한다면 만찬장에 오른 와인 가격을 누가 다시 입에 올리겠는가.

 

/ 박해현 논설위원 h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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