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로 걷게 하라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걷기의 중요성을 최초로 설파한 철학자이자 정치인이다. 그는 틈만 나면 제자들과 함께 걸으면서 토론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철학을 가르쳤다. 그가 걷기 예찬에 나선 것은 걷기가 자연과 세상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걷기를 통한 발의 자극이 인간의 신경과 두뇌를 깨치게 하고, 사고와 철학의 깊이를 더하게 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그의 그룹은 '소요학파(逍遙學派)' 또는 '산책학파'로 불렸다.
새삼 아리스토텔레스를 언급하는 것은 최근 65세 이상 노인에 대한 지하철 무임승차가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고령 인구의 걷기 효과가 과소평가된 듯해서 하는 말이다.
노인들은 그동안 부담없이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를 가기 위해 아침부터 외출 준비를 했다. 낮시간 햇볕을 쬐며 집과 지하철역 사이를 왕복했고, 행선지를 찾아 걸어 다녔다. 다양한 걷기 운동의 효과를 공짜로 맛본 것이다.
걷기가 뭐 그리 대단한 운동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그동안 이뤄진 건강 연구를 보면 걷기처럼 간단하면서도 효과가 좋은 운동은 없다. 호주에서 시골 사람이 대도시로 근무지를 이동하니까 당뇨병 발생이 많이 늘어났다. 그들을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내니 7주 만에 혈당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런 현상의 핵심은 걷는 양의 차이였다.
비만이지만 신체 활동이 많은 사람과 말랐지만 잘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있을 때, '게으른 말라깽이'가 '부지런한 뚱보'보다 당뇨병 위험이 2배 높았다는 것이 미국 연구 결과다. 독일에서는 계단 오르기, 빠르게 걷기 등 일상생활 속에서 활발한 신체 활동을 매일 10분씩 하면 일주일에 3번 격한 운동 한 것과 맞먹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정신의학계에서는 산책 등 가벼운 운동이 약물 처방에 버금가는 우울증 치료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노인들을 접하면 편하게 해주려고 자꾸 누우라고 한다. 그러나 이게 노인들의 건강을 망치는 길이다. 가뜩이나 근육량이 적은 노인들이 눕거나 가만히 있으면, 근력은 더 떨어진다. 식욕도 없어져 급속히 쇠약해진다. 골다공증 발생도 늘어난다. 이 때문에 사소한 충격에도 잘 넘어져 골절을 입기 쉽다. 노년기의 골절은 급격한 기력 상실로 이어져 회복 불능 상태를 만들기도 한다. 정작 어르신을 위한다면, 체력이 닿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한 많이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효심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80을 넘어 90세로 치닫고 있다. 앞으로 노년 계층이 얼마나 건강하게 지내느냐에 따라 국가 전체 의료비 부담 규모가 달렸다. 이들 대다수가 집에서 활력 없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가며 요양을 하고, 많은 이가 병원 신세만 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노인들에게 좀 더 활기있게 생활하고, 많이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노년 인구가 해마다 늘면서 국가의 부담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지하철 적자 몇 천억원 줄이자고 건강보험 재정을 해친다면 소탐대실(小貪大失)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노인들에게 무엇이든 동기를 부여해서 그들이 움직이고 걷게 만드는 것의 가치는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doctor@chosun.com
여행의 목적지 (0) | 2010.06.26 |
---|---|
삼각산을 오르며 삼각산을 생각한다 (0) | 2010.06.24 |
얼마나 자주 등산하나 (0) | 2010.06.21 |
다리가 바빠야 오래 산다 (0) | 2010.06.13 |
주 1회 등산하면…체지방 감량되고 눈 건강에도 좋아 (0) | 2010.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