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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아름다운 잡초의 ‘무소유’

글모음(writings)/꽃과 나무

by 굴재사람 2010. 5. 24.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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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아름다운 잡초의 ‘무소유’

 

 

올해 봄은 다른 해보다 더디게 온 것 같다. 늦겨울의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에 우리에게 전해진 너무나 놀랍고도 안타까운 소식 때문에 유난히 추웠던 겨울을 지나 따스한 봄을 맞이하는 감회가 무척 새롭다. 말할 수 없이 반갑기도 하다. 어떤 이는 매년 맞이하는 특별할 것 없는 봄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올해의 봄만큼은 예년과 다른 새로운 봄이라고 단언한다. 아니 꼭 그랬으면 좋겠다.

주연은 조연이 있어 빛나는 것

봄이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이 사랑스러운 이미지이다. 따스한 햇볕, 푸른 새싹 그리고 향기로운 꽃이 만발하는 풍경 등 한 폭의 수채화가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다. 나는 남자이지만, 생각해 보면 어려서부터 꽃을 참 좋아했다. 백합 장미 목련 안개꽃 등 갖가지 꽃의 꽃말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며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선명하다. “요즘 세상에 남자가 꽃을 좋아하는 게 어때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주위엔 아직도 “남자가 무슨 꽃이야?”라는 시선이 많은 것 같다. 내 주위에는 보수적인 사람이 많은 것일까.

남자가 꽃을 좋아하는 게 보수나 진보와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여하튼 요즘 나의 소일거리 중 하나는 한 달에 두 번씩 오던 정원사를 대신해 우리 집 정원을 가꾸는 것이다. 서울 강남의 한복판에 담장 높은 커다란 단독주택을 가진 것도 모자라 거기에 딸린 40평이 훌쩍 넘는 개인 정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큰 행운임을 아는 나는 요즘 정원을 가꾸며 새삼스레 깨닫는다.

 

정원을 가꾼다는 말만 듣는다면 많은 사람이 꽃과 나무에 화려한 물뿌리개로 우아하게 물이나 주는 장면을 상상할 것 같은데 실은 전혀, 아니 절대로 우아하지 않다. 오히려 큰 노동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이름 모를 잡초와의 한바탕 전쟁이랄까. 잡초는 어찌나 생명력이 질긴지 뽑고 뽑아도 또 나오고 애초에 잘 뽑히지도 않는다. 나는 잡초를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그래! 이 잡초들도 백합이나 장미처럼 이름이 있을 거야.’ 그러고는 이어서 ‘그동안 너무 꽃만 보려 했지 잡초는 그저 잡초이기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태어날 때부터 평민 또는 양반으로 신분의 격차를 두었던 조선시대처럼 말이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란 정원에서 아름답고 향기 나는 꽃이 되기를 원하지, 아무도 향기나지 않고 모양도 평범한 잡초가 되려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잡초가 없다면 꽃이 귀한 줄 알까.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뛰어난 조연이 있어야 주연이 빛나지 않던가. 나는 왜 이렇게 평범하고도 비범한 진리를 이제야 깨달았을까. 내 무지함을 탓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동안 나도 오로지 화려한 꽃이 되기를 원했음을 말이다.

무던한 잡초에게 삶의 의미 배워

나는 17세에 세계무대에 데뷔했기에 어린 나이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살아왔다. 현재도 그렇게 살아간다. 그렇기에 내가 금언으로 삼는 말이 ‘일찍 핀 꽃이 빨리 진다’였는데 뒤돌아보면 나는 늘 빨리 시들지 않기 위해, 늘 향기를 내뿜기 위해, 늘 화려한 꽃봉오리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온 것만 같다. 그런 생각이 들면 절로 쓴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한 가지를 깨달았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초라하게 지는 꽃보다는 나름의 자부심과 가치를 느끼며 꿋꿋하게 질긴 생명력을 지닌 잡초처럼 살아가는 일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을. 인생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고들 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존재해도 보는 시각에 따라, 본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보일 것이다. 물론 인생이 쉽지는 않다.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인생이 꼭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지만 또 그렇게 안 좋지만도 않은 것 같다. 내가 말한 잡초 같은 시선에서 인생을 산다고 가정한다면 과한 욕심, 분에 넘치는 욕심 없이 편안하고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 뵈었던 법정 스님께서 친필 사인과 함께 선물해 주신, 이제는 내게 보물과도 바꿀 수 없는 책 ‘무소유’를 보면서 ‘그래, 사람이 과한 욕심 없이 살아갈 수만 있다면 인생의 무게도 조금 더 가벼워지고 행복해질 텐데’ 하고 느꼈던 것을 올봄 정원을 가꾸다 발견한 잡초를 보며 다시 떠올렸다. 왜 사람들은 아프고 안 좋은 기억은 선명하게 기억하면서 좋은 기억, 또 꼭 필요한 깨달음의 기억은 잘 잊고 살아갈까. 그래서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는 것 같다.

여기에 내가 하고픈 말을 하나 더 보태고 싶다. 인생은 시험장이라고. 왜냐고 물어본다면 배우고, 배운 점을 계속 복습해야 그에 맞는 답을 근접하게나마 찾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인생을 연습이라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 하지만 신께서는 우리에게 연습 없이 실전만을 내려주셨으니 부딪쳐 배우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임형주 팝페라 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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