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인지 봄인지 분간할 수 없는 이 냉기에서 얼굴을 비치다 사라지면 내 마음은 일 년 내내 또다시 겨울이다.
찬 겨울이 오락가락하는 흙바람 속에서 수삼 일을 봉오리 활짝 피었다 사라지는 이 비정한 무정
아름다움은 실로 순간이라 하지만 긴 긴 겨울이 풀리려는 이 차가운 바람 속에서 삼사 일을 네가 내 눈에 황홀히 어리다 사라지면
내 마음은 일 년 내내 너를 기다리는 또다시 긴 겨울이다.
조병화, 『나귀의 눈물』
<꽃>이라는 제목으로 이러한 시를 이번 봄을 맞이하며 썼다.
아침 저녁으로 달리는 서울 인천 간의 고속도로 차창엔 계절의 변화가 그렇게 빠를 수가 없다. 지나간 겨울은 참으로 끈질겨서, 좀 풀리는가 하면 다시 추워지고, 그러다간 또 활짝 개고, 하면서도 좀처럼 봄이 열리질 않았다.
그러면서도 날로 꽃들이 터지기 시작하여, 개나리·진달래, 먼 마을에 살구꽃들이 봄을 활짝 몰고들왔다. 이렇게 해서 한 삼사 일동안의 경인(京仁)하이웨이는 실로 개나리의 노란 물결로 눈이 부셨다.
그러다간 어느 새, 실로 어느새 그 노란 개나리 물결리 싹 사라지고 말았다. 한 순간 같은 아쉬움이 아닌가. 긴긴 겨울에 비하면 허망하기 짝이 없는 황홀이었다. 이번 겨울은 얼마나 어둡고 긴 추운 겨울이었던가. 그만큼 그 황홀한 절망스러운 허전한 감을 안겨주었다. 그 허전한 아쉬움을 시로 묶어 본 것이다.
그 며칠을 피기 위해서 꽃들은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린다. 이 일년에 비하면 꽃피는 며칠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짧은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며칠 동안 그 꽃들은 자기 생명의 뜻을 다하는 것이다. 자기 종족의 번식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유감없이 피웠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학창시절 줄곧 이러한 죽음의 교훈을 늘 생각해 왔었다. 죽는다, 언젠가는 죽는다, 그 죽음이 올 때까지 이 세상에서 무얼 할건가, 하는 생각으로 매시간, 매일매일을 살아 왔다. 생명 그대로의 그 시간을.
그렇게 살아 온 내 인생이 얼만큼의 열매를 이루어 놓았는가 아직은 모르는 일이지만, 꽃이 피었다가 지면, 나의 나이는 또 일 년, 한 살 더 먹어 가는 것이다. 그 더 먹는 한 살을 어떻게 나대로 더 충실하게 살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항상 맑은 눈을 닦고 그 눈에 비쳐드는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나의 변화를 응시하면서.
생명, 그것은 참으로 짧은 시간이다. 그 짧은 시간을 어떻게 살것인가, 하는 생각이 늘 내 머리 속을 감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