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김경주(1976~ ) -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 그리는 화가였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보내곤 하였다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양팔이 없어 화필을 잡을 수 없는 구족화가에게 입은 어미의 자궁 속에 두고 온 그의 손이다. 붓을 문 입으로 그가 그리는 것은 이 세계의 비밀이지만, 한편 상실한 근원과 만나려는 뜨거운 열망 자체다. 실체가 캄캄할수록 그리움 또한 그만큼 깊어지는 것.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의 외계인 이 불구의 세상에서는 우리 모두가 되돌아가지 못하는 자궁 속의 추억을 그리는 외로운 구족화가가 아닐까. <김명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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