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고흥 호부혈(豪富穴)
서양의 해적 나오는 영화나 모험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메뉴가 보물지도이다. 영화에서 이 보물지도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조선의 지도가 있다. 바로 명당도(明堂圖)이다. 명당도는 명당이 어디에 있는가를 간략하게 표시한 지도이다. 명당 주변 산줄기의 흐름이 어떻게 이어지고, 물이 어떻게 감싸 돌고 있는가를 그림으로 표시한 형태이다.
이 명당도는 풍수가들 사이에서 각종 비결류(秘訣類)의 형태로 돌아다닌다. 예를 들면 '변산의 어느 봉우리 밑에 군왕지지(君王之地)가 있다'는 식이다. 또한 이 명당도는 유서 깊은 집안의 두툼한 족보 앞부분에 삽입되어 있다. 중시조의 묏자리가 어느 지역에 있고, 어떤 산세이고, 얼마나 대단한 명당인지를 한눈에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그 집안의 번성은 선대의 이 명당과 관련이 있음을 암시한다.
해적영화에 나오는 보물지도의 보물이 누런 황금과 보석궤짝이라면, 명당도에서 암시하는 보물은 무엇인가? 조상의 편안한 사후세계와 그 후손의 현세적인 영화(榮華)였다. 부모가 죽어서 명당에 들어가면 편안한 사후세계가 보장되고, 그로 말미암아 후손들이 잘된다고 믿게 해준 것이 명당도의 기능이었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기능과 해적 보물지도의 효과가 합해진 것이었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이 '명당도'는 보물지도로 귀하게 대접받았지만, 세상이 바뀌어 이제는 아무도 믿지 않는 신화도(神話圖)가 되었다. 풍수는 신화가 된 것이다. 얼마 전에 중국의 석숭(石崇)과 같은 큰 부자가 나온다는 명당도를 입수하였다. 전남 고흥(高興)의 호형리에 있다는 호부혈(豪富穴)이 그것이다.
원래 고흥은 부자가 많이 나오는 지형이다. 지도를 보고 촌로에게 물어물어 찾아가 보니까 높은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용의 등에 올라탄 것 같은 기룡형(騎龍形)이다. 명당 주위로 멀리 삼면이 바닷물로 둘러싸인 곳이었는데, 오른쪽은 득량만의 바닷물이 보이고, 왼쪽은 순천만의 바닷물이 보인다. 재물은 물과 관련이 있어서, 큰 부자 터는 반드시 주변에 물이 감아 돈다는 원리에 부합되는 지점이었다. '명당도'라는 지도는 한국에만 남아 있는 독특한 문화 콘텐츠이자, 신화적 전통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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