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장에서는 눈을 치우지 않습니다
이 고장에서는 봄도 치우지 않습니다
지난 가을 요양 온 나는
그리움을 치우지 않고 그냥 삽니다
대관령 산비탈 작은 오두막
여기서 내려다보면, 눈 내린 마을이
하얀 도화지 한 장 같습니다
낡은 함석집들의 테두리와 우체국 마당의 자전거가
스케치 연필로 그려져 있습니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3월, 겨울이 긴 이 고장에서는
폭설이 자주 내리지만 치우지 않고 그냥 삽니다
여름도 가을도 치운 적이 없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도시처럼 눈을 포클레인으로 밀어내지 않습니다…
- 유금옥 '춘설' 부분 -집앞 골목길에 쌓인 눈을 치우는 사람이 없다. 해님에게 맡긴다. 강원 산골 마을에선 다들 그렇게 한단다. 새로 올 것보다는 지금 있는 것을 더 애지중지한다. 욕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산골마을에 무욕(無欲)과 무심(無心)이 내려앉아 있다. 그래서 녹슨 추억도 절대 치우는 일이 없다. 언제 찾아도 정겹고, 푸른 나무와 맑은 물이 넘쳐나는 까닭이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3월의 강원 두메산골엔 이런 이야기가 꽃을 피우고 있다.
남궁 덕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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