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수경신(守庚申) 신앙
중국의 관광기념품점에 가면 흔히 세 마리 원숭이를 새긴 나무 조각을 볼 수 있다. 각각 입과 눈과 귀를 가렸다. 일본의 신사에 가도 세 마리 원숭이 조각상을 자주 본다. 인사동에서도 심심찮게 보았다.
설명을 청하면 대뜸 시집살이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이란 뜻이라고 설명한다. 좀 더 고상한 축은 '논어'의 "예가 아니면 보지를 말고, 듣지도 말며, 말하지도 말라"는 구절을 일러준다. 그런데 왜 하필 원숭이인가?
사실 이 조각상은 예전 민간 도교의 수경신(守庚申) 신앙에서 나왔다. 우리 몸에는 삼시충(三尸蟲)이란 벌레가 있다. 요놈은 몸속에 숨어 주인이 하는 과실을 장부에 기록해 둔다. 그러다가 60일에 한 번씩 경신일 밤이 되면 주인이 잠든 틈에 몸에서 빠져나가 옥황상제께 그간의 죄상을 낱낱이 고해 바친다. 그러면 지은 죄만큼 감수(減壽) 즉 수명이 줄어든다.
다만 삼시충은 치명적 약점이 있다. 주인이 잠을 안 자면 절대로 몸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래서 경신일 밤마다 사람들은 함께 모여 술 마시고 놀면서 밤을 새웠다. 삼시충의 고자질을 원천봉쇄하겠다는 뜻이다. 경신(庚申)의 신(申)이 잔나비, 즉 원숭이여서 삼시(三尸)를 삼원(三猿)으로 대체했다. 눈 코 입을 막아 설령 하늘에 올라가더라도 고자질을 못하게 한 것이다.
고려 중기 이후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의 경신일 기사를 보면 거의 예외 없이 "왕이 밤에 신하들과 잔치하였다"거나 죄수 사면 기사가 뜬다. 연산군은 아예 삼시충에 대한 시를 짓고, 신하들에게 자기 시의 운자(韻字)에 따라 시를 지어 제출하도록 숙제를 내기까지 했다. 수경신 행사를 노래한 한시도 적지 않다. 죄를 안 짓고는 못 살겠고, 일찍 죽기는 싫어서 아예 삼시충을 영구 박멸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로 고안되었다.
섣달 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속신도 다 이런 민간 도교신앙에서 나왔다. 눈썹이 센다는 것은 늙는다는 의미다. 결국은 수명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하기야 섣달 그믐밤에 부뚜막의 조왕신(�B王神)이 주인이 잠든 사이에 하늘로 올라가면 1년치 죄상을 다 보고하게 될 테니, 그야말로 십년쯤 감수(減壽)할 일이 아닌가. 그러게 평소에 좀 착하게 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