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신의 물방울인가
神은 물을 만드셨을 뿐이고…와인은 그저 와인일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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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다소 주춤해졌지만 한때 '신의 물방울'이란 일본 만화 열풍이 분 적이 있다. 흥미로운 책 이름도 바람을 일으키는 데 한몫했다. '신의 물방울'이란 표현은 신들이 마시거나 신께 바치는 경건하고 신비한 음료 또는 신이 인간에게 주신 귀한 선물 등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와인은 신의 음료,우유는 아기들의 음료,차는 여자들의 음료,그리고 물은 짐승들의 음료"라는 재미있는 말이 있다. 그러나 '신의 물방울'을 '신의 음료'로만 이해한다면,와인보다도 복숭아나 망고 같은 과일로 만든 '넥타'가 더 잘 어울린다. 라틴어로 '넥타'는 그리스어 '넥타르'(nektar)가 어원으로 '죽음'과 '뛰어넘다'는 두 단어의 합성어다. 그러나 알코올이 든 와인은 육신의 고통을 달래주는 진정제인 동시에 영혼을 해방시키는 구원자로 오랜 동안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특히 초기 인류는 알코올에 의해 이성과 자제력이란 굴레를 벗은 자연상태에서 더욱 신과 가까워진다고 믿었다.
고대로부터 와인은 찬미의 대상이며 신성한 제례용 술이다. 이집트에서 와인은 토속신께 바치는 헌주로 쓰였으며,죽은 왕과 함께 묻히는 부장품으로도 사용됐다. 또한 로마에서도 와인을 마시는 의식은 주피터 신께 드리는 헌주로 시작했다. 와인 이외에 물,꿀,맥주 등도 헌주로 쓰였지만,기독교가 본격적으로 전파된 후에는 신과 관련된 의식에는 신의 피를 상징하는 성스런 존재인 와인이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됐다.
와인은 신비한 음료로 희소성과 높은 가격 때문에 부유층과 권력자들만 마시는 사치품이자 권위의 상징이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는 왕과 귀족,제사장 같은 특권층만 와인을 접할 수 있었으며 와인이 보다 보편화됐던 그리스와 로마에서조차 계층에 따라 와인의 질뿐 아니라 마시는 자리와 방법에도 확연한 차별이 있었다. 여기에 여성의 음주에도 제한이 있었다. 따라서 질 좋은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소수 엘리트계급을 의미했으며,가난한 서민은 묽고 시큼한 와인이나 맥주 등 거친 알코올 음료에 만족해야 했다.
빅토르 위고는 신께서 물을 만드셨지만,인간은 와인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를 주관하는 신의 가호가 없다면 포도나무나 와인 모두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문화권마다 자연과 포도,와인을 주관하는 신들이 있었는데,특이한 것은 초기 역사에서는 여신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3000년 전 수메르에는 와인과 다산의 여신 게스틴(Gestin),와인 제조자의 여신인 시두리(Siduri)가 있었다. 인근 시리아에는 반인반신인 다넬이 딸과 함께 포도를 재배했으며,이집트에서도 뱀의 여신 레넨우테트(Renenutet)가 포도 수확을 주관했다. 이 밖에 지중해 크레타 섬에서 와인 제조를 관장했던 미르토스(Myrtos) 역시 여신이었다.
그러나 와인과 가장 관련이 깊은 신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Dionysus)로,로마 신화에선 술과 와인의 신인 바쿠스(Bacchus)에 해당한다. 제우스신과 인간 세멜레의 아들로 태어난 술의 신 디오니소스는 자연의 생성력을 주관하고 포도나무를 기르는 일과 그 열매의 즙을 짜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는 태아일 당시 10개월의 반은 어머니 세멜레의 뱃속에 있었고 나머지 5개월은 아버지 제우스의 허벅다리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해마다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하는 부활의 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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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인류의 초기 역사에서 와인은 신과 연관된 종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발달된 과학지식과 첨단장비가 이용되는 현대에도 와인의 수확량과 질은 자연환경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 곳에서 풍부하게 생산되는 다양한 종류의 와인은 더 이상 신과 연관된 신비한 술은 아니다. 와인은 만인에게 친근하고 대중화된 마시는 음식으로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
/와인 칼럼니스트 · 여유공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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