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실버의 기도
제가 정말로 늙어 이 나이를 먹도록 뭐했나 싶기도 하구요
내가 싫어하던 늙은이 행세를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요즈음은 갑자기 잠도 잘 오지 않고 정신이 몽롱하기도 하고
깜짝 깜짝 놀라기도 하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살아 오면서 아주 싫어하던 늙은이 짓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게
될까봐 걱정이 많습니다.
하느님 !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 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 잡아보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젊었을 때처럼 여유있고 유머가 있게 하소서.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가진 크나큰 지혜의 창고를 모두다 이용하지 못하는 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저도 결국엔 친구가 몇 명은 남아 있어야
하겠지요.
끝 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내 팔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 주소서.
내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나고 그것들에 대하여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얘기를 기꺼이 들어줄 은혜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만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을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제 기억력을 좋게 해 주십사고 감히 청할 순 없사오나
제게 겸손된 마음을 주시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나도 가끔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적당히 착하게 해 주소서. 저는 성인까지 되고 싶진 않지만...
어떤 성인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그렇더라도 심술궂은 늙은이는
그저 마귀의 자랑거리가 될 뿐이라는걸 잊지 말게 하소서.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빨리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바르게 말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
저로 하여금 곱게 늙기를 힘쓰는 늙은이가 되게 하시고
하느님께서 지금까지 부어주신 넘치는 은혜와 사랑을
이 나라와 겨레에게 몇 배로 돌려주고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젊은이나 늙은이나 어린이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고
사랑을 받는 그런 늙은이로 나머지 삶을 살아가게
나머지 걸음을 이끄시옵소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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