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인터넷 도참가(圖讖家)
미래에 대한 예측이나 예언은 현재를 구속시키는 힘이 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예언은 체제를 강화시킬 수도 있고, 뒤흔들어 버릴 수도 있다.
낙관적인 예언은 희망을 준다.
반대로 비관적인 예언은 체제를 뒤흔드는 대항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 있다.
낙관적인 예언을 주로 하는 사람을 화이트 매직(white magic)이라고 하고,
비관적인 예언을 주로 하는 사람을 블랙 매직(black magic)이라고 규정한다.
점술가를 분석해보면 화이트 매직보다는 블랙 매직이 훨씬 수입이 좋다.
앞날이 괜찮다는 이야기를 보통 사람이 들으면 기분이 좋은 선에서 끝난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 특별하게 사례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 석 달 있다가 교통사고로 죽거나 병신 된다"는 점괘를 들으면
듣는 사람은 점술가에게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
매달린다는 것은 돈을 지불한다는 뜻이다.
이를 보면 화이트보다는 블랙 매직이 훨씬 힘이 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국가적인 차원의 예언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상황일 때, 낙관보다는 비관적인 전망 쪽이 훨씬 힘을 얻는다.
대표적으로 조선시대의 풍수도참(風水圖讖) 예언서인 정감록(鄭鑑錄)이 그렇다.
정감록은 난리가 났을 때에 어디로 피란 가면 살 수 있다는 내용과,
이씨왕조가 망하고 정씨가 새로운 왕조를 세운다는 두 가지 내용으로 압축된다.
정감록의 예언은 18세기부터 19세기 말까지
200년 동안 끊임없이 계속해서 체제를 뒤흔드는 '대항이데올로기'로 작용했다.
조선시대 반체제 인사들의 필독서요 교과서가 바로 정감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언서라고 해서 다 믿는 것은 아니다.
블랙 매직서인 정감록이 이렇게 민초들에게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번의 전쟁에서 정부가 보여준 무능이었다.
'정부를 믿고 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 '내가 살 길은 내가 알아서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생존철학을 백성들이 갖게 되면서부터이다.
IMF 위기에서 국민들이 확인한 '각자도생'의 철학이
이번에 미네르바라는 블랙 매직 계열의 '인터넷 도참가(圖讖家)'를 탄생시키는 배경이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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