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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꽃나무

글모음(writings)/꽃과 나무

by 굴재사람 2008. 5. 2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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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피던 짧은 날들은 가고
  나무는 다시 평범한 빛깔로
  돌아와 있다
  꽃을 피우지 못한 나무들과
  나란히 서서
  나무는 다시 똑같은 초록이다
  조금만 떨어져서 보아도
  꽃나무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된다
  그렇게 함께 서서
  비로소 여럿이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고
  마을 뒷산으로 이어져
  숲을 이룬다
  꽃피던 날은 짧았지만
  꽃 진 뒤의 날들은 오래도록
  푸르고 깊다
  ---「초록 꽃나무」전문
 
  매화나무가 초록 잎을 달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사과나무도 목련나무도 산벚나무도 다 초록 잎으로 함께 흔들리고 있습니다.

  꽃이 피어 있을 때는 꽃만으로 구분이 가던 나무들인데
   "꽃피던 짧은 날들은 가고 / 나무는 다시 평범한 빛깔로 / 돌아와 있습니다."
  두충나무 헛개나무 뽕나무와 섞여 있어 꽃나무인지 아닌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꽃나무들은 어쩌면 이렇게 초록에 묻히는 것이 서운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초록으로 하나 되어 섞이면서 "비로소 여럿이 쉴 수 있는 /
  그늘을 만들고 / 마을 뒷산으로 이어져 / 숲을 이루는 것입니다."

  한 그루의 꽃나무에서 비로소 숲을 이루는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꽃 피던 날은 짧았지만" 나무의 일생 중에는 꽃 진 뒤에
  초록 잎으로 지내는 날이 훨씬 더 많습니다.

  초록의 날들이야말로 나무의 생명이 가장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는 날입니다.
  우리가 꽃피던 화려한 날들에만 매어 있지 않아야 하는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 도종환 '시인의 엽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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