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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강으로 가고 싶다

글모음(writings)/아름다운 글

by 굴재사람 2008. 1. 1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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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강으로 가고 싶다
오늘은 하루 종일 가슴 저 밑에서 출렁이는 강물 소리를 들었다.
내 가슴을 흔들고 내 몸을 흔들다가 강가 모래톱 어딘가에 
나를 부려놓고 흘러가는 강물 소리.
온종일 젖어 있다가, 온종일 설레게 하다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잔잔해진 강물 소리.
얼굴을 한쪽으로 젖힌 채 따뜻한 돌멩이를 갖다대고 톡톡 두드리면
귓속에서 쪼르르 흘러내릴 것 같은 강물 소리.
그 강줄기 위에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꽃잎처럼 띄워놓고
천천히 따라 내려가고 싶다.
따뜻한 모래밭에서 사랑하는 이의 무릎을 베고 누운 듯 
편안하게 누워 잠시 잠이 들고 싶다.
눈을 감고 풀잎을 스치는 소리처럼 들려오는 그의 말소리를 
듣고 있고 싶다.
그 말을 해본 지가 언제인지 너무도 오래된 사랑한다는 말을 
강물 소리 곁에서 다시 하고 싶다.  강으로 가고 싶다.
'다시 바다로 가고 싶다고, 그 호젓한 바다, 그 하늘로.
내가 원하는 건 오직 키 큰 배 한 척과 방향 잡을 별 하나...
나는 다시 바다로 가야겠다고, 떠도는 집시의 생활로,
갈매기 날고  고래 다니는 칼날 같은 바람 부는 바다로' 가고 싶다고
노래한 시인도 있지만 나는 다시 강으로 가고 싶다.
"여유 있게 흐르면서도 온 들을 다 적시며 가는 물줄기와
물살에 유연하게 다듬어졌어도 속으론 참 단단한 자갈밭을 지나
천천히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욕심을 버려서 편안한 물빛을 따라 흐르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한적한 강 마을로 돌아가 외로워서 여유롭고
평화로워서 쓸쓸한 집 한 채 짓고 맑고 때묻지 않은 청년으로 
돌아가고 싶다."
지는 노을이 너무도 아름다워 강물도 그만 노을 물이 들어버린 강가에서
나도 다시 잃어버린 감동을 되찾고 싶다.
아름다워서 아름다움을 주체할 수 없고, 외로워서 외로움을 참을 수 없고
슬퍼서 슬픔으로 하루가 다 젖는 그런 출렁임을 다시 만나고 싶다.
제비꽃 한 송이를 보아도 한없이 사랑스럽고 물새 한 마리를 보아도
가슴이 애잔해져 오던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다.
다음 글쓰기 시간에는 시를 배우러 오는 소녀들에게 너희도 모두 
어디인가로 가라고 말해주어야 겠다.
숲으로 가고 싶으면 두 팔을 벌리고 숲으로 가고,
드넓은 바다로 가고 싶은 사람은 파도를 헤치며 배를 저어 나가고,
끝없는 벌판으로 나가고 싶은 사람은 말을 달려 벌판으로 가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러 가고 싶은 사람은 그들 곁으로 가고,
그래도 아직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심약한 사람이 있으면 강으로 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오늘은 하루 종일 마음 깊은 곳에서 시작하여 여린 살갗을 적시는 
강물 소리를 들었다.
부드럽게 흐르면서도 오래오래 유장하게 흘러가는 물 소리,
강물처럼 맑으면서도 착해지는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편안하게 내 발걸음, 내 속도에 맞는 강물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
도종환님의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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