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炎天에 붉은 웃음 웃는 배롱나무

글모음(writings)/꽃과 나무

by 굴재사람 2022. 7. 1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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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7 수원 효원공원



목백일홍(木百日紅), 백일홍 나무로도 불리는 배롱나무는 섣달 열흘간 ‘붉은 아름다움’을 토해내며 뜨거운 여름을 환하게 밝히는 꽃이다. ‘붉은 꽃은 열흘을 가지 않는다’라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한다.한달 안팎으로 금세 피었다 지는 생명력 짧은 봄꽃과 달리 그냥 눈길만 던져도 염천(炎天)에 붉은 웃는 배롱나무는 무궁화 자귀나무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여름꽃이다. 그 중에서도, 수형과 줄기 등 자태가 맵시 있고, 화사하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이다. 보통 7~9월에 환한 웃음꽃을 피워 더위에 지친 이들에게 청량한 에너지를 선사한다.

배롱나무는 알고보면 ‘백일동안 거듭나는 꽃’이다. 한 송이 떨어지면 다시 한 송이 피기를 반복하며 100일 기도하듯 가열차게 이어진다. 이 꽃들의 거듭남을 모른 채 똑같이 피어있는 착각을 일으킨다. 꽃송이가 한번 피면 백일 동안 계속 피어 있는 게 아니라 백일 동안 새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도종환 시인이 ‘목백일홍’에서 “수 없이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우릴 피워 올려,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다. 배롱나무를 “안에 소리 없이 꽃잎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꽃”이라고 노래했다.

배롱나무는 시인묵객들이 특히 사랑한 ‘선비의 꽃’이다. 배롱나무 줄기는 나무껍데기(수피는)가 없이 매끈한 모습이 청렴결백한 선비를 닮았다고 서원이나 사원, 정자 주변에 많이 심었다. 시인묵객들과 학자들은 가식이 없는 순수함 그대로 살겠다며 배롱나무 앞에서 곡차 마시며 시를 읊었다.

배롱나무는 일편단심(一片丹心) ‘충절의 꽃’이다 . ‘지난 저녁 꽃 한 송이 떨어지고(昨夕一花衰)/오늘 아침에 한 송이 피어서(今朝一花開)/서로 일백일을 바라보니(相看一百日)/너를 대하여 좋게 한잔하리라(對爾好衡盃).’ 사육신(死六臣) 성삼문의 시 ‘백일홍’이다. 한 송이가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어떤 마음을 지키는 충절을 의미한다. 붉은 꽃은 바로 성삼문의 단종을 향한 일편단심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백일홍은 핀 꽃이 100일간 있지 않다. 그렇게 하루하루 100일 기도하듯 핀다.


불가(佛家)에서는 배롱나무를 ‘윤회의 꽃’으로 부르기도 한다.

“ 삶은 다르다. 죽음이 끝이 아니다. 배롱나무의 백일홍은 100일간 피고 지면서 탄생과 소멸의 윤회 법문을 설한다. 순간이 쌓여 날마다 좋은 날을 만든다. 열흘만 반짝 붉게 빛나고 말 것인가. 배롱나무 백일홍은 피고 질 때마다 붉게 빛나는 삶을 100일간 살아낸다. 여름마다 그 뜨거운 배롱나무 백일홍의 철학을 부처님 도량에서 만날 수 있다. 좋지 아니한가.”(최호승 ‘월간불광’ 편집장 글 중에서) 배롱나무가 ‘부처꽃과’에 속한 건, 윤회를 설법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사찰이나 궁궐, 무덤·서원·향교·누정을 진홍빛으로 물들이는 배롱나무는 중국 자미성(紫薇省)에서 건너왔다고 한다.덕수궁 석조전과 환상적 조화를 이루는 우람한 4그루 배롱나무는 봄에는 매끈한 곡선미의 가지와 줄기가 일품이다. 여름에는 4그루가 차례로 피며 붉은 꽃사태를 이룬다. 특히 사대부들에게 두루 사랑받았고 소쇄원, 식영정 등 조선의 문인들 정자나 집에 주로 심어졌고, 담양 후산리 명옥헌에 우거진 배롱나무 숲이 유명하다.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 기와는 배롱나무로 뒤덮인다. 전남 담양 후산리 명옥헌(鳴玉軒)의 우거진 배롱나무 숲은 무릉도원을 방불케 한다. 부처꽃과에 속해서인지 남도에는 배롱나무 명찰이 많다. 전남 화순 만연사 대웅전 옆 가지를 늘어뜨린 붉은 배롱나무, 충남 서산 개심사 연못을 물들이는 배롱나무, 전남 강진 백련사와 충남 영동 반야사 3층 석탑(보물) 곁 수령 500년 넘는 배롱나무 두 그루 등이 대표적이다.

 

 


초본 백일홍과 구분하기 위해 백일홍 나무라고 했다가 배롱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백일홍→배기롱→배이롱→배롱으로 변했다고도 한다. 일명 간지럼나무, 간즈름나무라고도 한다. 개미 등이 나무줄기를 타고 오르거나 나무껍데기를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이며 간지럼을 타듯 떨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흰색 꽃이 피는 것을 흰배롱나무라고도 한다. 꽃은 지혈·소종의 효능이 있어, 한방에서 월경과다·장염·설사 등에 약으로 쓴다.

글·사진 정충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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