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旅行家)
- 조병준(1960~ )
나는 세상을 떠도는 집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와서
진귀한 요리와 가벼운 이불을 찬탄했지만
내게는 한 번도 집이 없었다네
나는 원치 않았지만
사람들은 내 이름 뒤의 괄호 안에
써 넣는다네―여행가(旅行家)
하여 하는 수 없이 이 집을 지고 다닌다네
몸이 머무는 집 외에도 자신의 ‘일’로 이루는 집이 있다. 시인은 30대의 대부분을 인도와 유럽 등지를 떠돌며 책을 썼다. 그리하여 “여행가”라는 집이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일의 집’들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유의미하므로 세상을 떠돌 수밖에 없다. 작가는 글로, 화가는 그림으로, 음악가는 노래로 집을 지며 세계를 떠돈다. 집과 집들의 집합이 한 세계를 이룬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여행가(旅行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