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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모음(writings)/좋은 시

by 굴재사람 2015. 5. 13.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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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사발이 되는 건 싫다
묵 한 사발 가운데 놓고
한잔 나눌 누군가 있으면 좋겠다
메밀묵이든, 청포묵이든, 도토리묵이든
묵은 느림의 결정체
앙금을 느릿느릿 저어 끓여
천천히 식혀야만 탱탱해지는 묵
빨리 먹으려하면 부서지고
빈 젓가락만 남는다
미끌미끌한 묵은
조심스럽게 집어 입에 넣고
쑥갓향 참기름 향이 묵에 스미도록
입안에서 으깨어
묵묵히 먹는 맛이 일품이다.

- 김필영, 시 '묵' -


정갈하게 썰어놓은 보들보들한 묵.
맛있는 양념장과 시원한 국물로 맛을 낸 묵사발.
그 정성스런 음식을 왜,
심한 타격을 받아 망가진 상태에 비유했을까요.
대충 젓가락으로 집을 수도 없는,
입안에서 으깨어 뒷맛을 느끼며 먹는 묵처럼
우리네 삶도 나름의 향을 느껴가며
천천히 맛보는 그런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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