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사에 가면
부처를 모신
대웅전에 가지 않는다
마당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석탑을 보지 않는다
영험 많은 산신각 문고리도 잡지 않는다
삼천사에 가면 나는
슬픔을 품듯
허공을 안고 헤엄치는 물고기들의 풍경 소리
경문(經文)처럼 마음에 새기며
대웅전 지나
산신각 지나
그늘진 뒤안 요사채 맨 끝 방
섬돌에 놓인
흰 고무신을 보는 것이다
누군가 벗어둔 지 오래된 듯
빗물 고여 있고 먼지도 쌓여 있는
그 고무신을 한참 보고 있으면
뚝,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
내 이마를 서늘하게 때리며 지나가고(아, 아픈 한 생이 지나가고)
가끔은
담 밑 구멍을 들락거리는 산쥐도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는 것이다
전생의 제 모습을 기억한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