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기로 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절이라고 예서제서 문자가 날아든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나에게는 올해도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는,
그러므로 정리할 게 있다면 서둘러야 한다는 신호로 느껴진다.
나는 사람을 오래 미워하기도 싫고 기분 나쁜 일을 마음에 오래 담아두는 것도 싫다.
인격수양이 잘되어서라기보다 내 마음이 어두운 채로 남아 있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해서다.
딸이 직장에 다닐 때 밉상인 상사가 있다면서 자주 투덜거렸다.
“엄마, 그 과장님은 왜 그런지 몰라.”
그래서 내가 위로의 말이랍시고
“얘, 그래도 그 과장이 너의 아빠도 아니고 너의 형제도 아니니 얼마나 다행이니.
부모형제는 싫어도 바꿀 수 없지만 회사 상사는 부서만 바뀌면 안 만나잖아”라고 하니
딸이 빙그레 웃으며 맞장구친다.
“맞아. 뗄 수 있는 관계라서 그나마 다행이네.”
그로부터 얼마 후 딸은 그 상사와 대면할 일이 없어졌다.
부서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새로운 곳에 가도 그런 사람이 한두 명씩은 끼어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은 어디에나 골고루 섞여 있다는 걸 깨달은 딸이 웃으며 말한다.
“엄마, 거기 가 보니 가족으로 만나지 않아서 다행인 사람이 또 한 명 있어.”
사람뿐 아니다.
1년 365일 가운데 어느 날은 유난히 일이 척척 풀리는가 하면,
이상하게 뭔가가 자꾸만 꼬이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이렇게 폭을 대버린다.
“아, 내 평생에 할당된 재수 없는 날들이 있을 텐데 오늘이 바로 그날인 모양이구나.
이로써 나의 할당량이 하루 줄었네.”
나는 이리저리 폭을 대가며 더 나쁜 것에 빗대어 상대적인 평안을 얻는데,
박영희 시인은 아예 한 수를 접어준다고 한다.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박영희의 ‘접기로 한다’ 중에서)
접기로 한다.
이 다섯 글자가 한 해의 마지막 주를 보내는 키워드가 될 것 같다.
이쯤에서 괘씸하고 섭섭하고 분한 일들이 있다면 접기로 하자.
반으로, 다시 반에 반으로, 접고 또 접으면 아무리 큰 것도 결국 우표만 하게 작아질 것이 아닌가.
접는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방법임을 새삼 깨닫는 즐거운 크리스마스다.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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